오피니언 분수대

이기는 건 기술이지만 비기는 건 예술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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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주철환 PD

“주례사가 길어지면 식사가 늦어지므로 3개월마다 직접 만나서 말해주겠다.” 빈말이 아니다. 새해 들어 ‘결혼수행평가’의 대면보고를 하러 찾아온 신랑(남편)이 벌써 세 명이다.

 홈쇼핑 대리로 일하는 필형은 개당 280만원 하는 가방을 납품회사 직원이 0 하나를 빠뜨리는 바람에 곤욕을 치렀다. 봄엔 아빠가 된다. 금융권 통합과정에서 연봉이 올랐다는 은행원 재호, 외국계 회사로 옮겨 리스크관리과장이 된 재연은 공인회계사다. 술자리가 줄어서 아내의 행복점수가 올랐단다.

 주례의 책무는 모름지기 ‘잘사는지’ 감별하는 것이다. “소형차 타고 다니는데 알고 보니 잘사는 사람이래.” 한마디로 부자라는 얘기다. “자주 싸우더니 요즘은 잘사는 거 같더라.” 화목하다는 뜻이다. 체크포인트는 경제와 금슬. 건강상태는 낯빛과 표정으로 금세 드러난다.

 내 앞가림도 못하는데 돈 버는 기술까지는 못 가르친다. 대신 사이좋게 사는 법을 알려준다. 좀 황당한 방법이긴 하다. 이를테면 화가 날 땐 노래를 부르라는 식이다(이 조언이 오히려 화를 부를 수도 있겠다). 그러나 믿음을 가지고 훈련하면 된다. 화날 때 부를 노래를 미리 선곡해 둔다. 배우자는 ‘이 사람이 지금 상태가 좋지 않구나’를 가늠한다. 그리고 화답의 노래를 부른다. “저 부부는 뮤지컬 배우인가 봐” 이웃조차 흐뭇해할 거다. 노래 부를 일은 점점 줄어들 것이다. 누차 강조하지만 화를 내는 건 불을 내는 거다. 불을 내면 재산도 타고 화상도 입는다. 무엇이 좋은가.

 예능주례의 동화 같은 조언을 들어주는 그들이 기특하다. 시간이 흐르면서 자녀교육법도 곁들인다. 요지는 이렇다. 이기는 법만 가르치지 말고 비기는 법도 알려주어라. 승자의 엄마도 좋지만 성자의 엄마는 더 좋다. 만델라의 어머니를 보라. 아이를 고독한 승부사로 키우지 마라. 자신감 대신 우월감으로 사는 건 위험하다. 겨루는 시간은 짧게, 사귀는 시간은 길게 가지면 행복해진다. 방송가에선 다 안다. 김구라는 카메라 앞에서만 독설가다. 그의 경쟁력이다. 경쟁심만 가지고 구라가 카메라 밖에서도 계속 독설을 퍼붓는다면 누가 그를 카메라 앞에 세우겠는가. 조명이 꺼지면 독설은 익살로 변한다. 그는 ‘잘사는 법’을 알고 있다.

 착한 아이로 길러라. 그래야 독거노인의 고독사를 피할 수 있다. 혼자만 잘사는 법을 배운 아이가 부모의 헌신을 기억할까. 땅을 치고 통곡할 땐 자식의 연락처조차 까마득하다.

 나라도 마찬가지다. 경제도 중요하지만 사이좋게 살아야 진짜 잘사는 나라다.

오늘의 자작시. 제목은 ‘승자’다. “이겼을 때 그냥 이겼다고만 말하자. 옳았다고 우기진 말자. 우는 자를 어루만지는 그대가 진짜 승자다.”

주철환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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