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선한 U대회 선수단의 체소 인상기 「모스크바」에 우의 심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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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초조 속에 떠나 웃으며 돌아 왔다. 「스포츠」사상 최초로 소련의 「모스크바」땅을 밟은 「유니버시아드」선수단 일행 38명은 떠날 때의 불안과 초조를 깨듯이 씻고 만면에 웃음을 띤 채 27일 하오 8시5분 KAL기 편으로 귀국, 가족의 품으로 돌아갔다. 10일 간의 격전 끝에 2개의 동「메달」을 획득한 우리선수들은 얼굴마다 웃음을 잃지 않는 힘찬 표정들- 지난 12일 출국 때에 보이던 초조와 긴장감은 찾을 수가 없었다. 선수들을 인솔한 김택수 단장을 비롯한 모든 선수들의 「모스크바」체소 인상기도 각양 각색, 다음은 김포공항에서 단원들이 밝힌 내용들이다.
-떠날 때와 도착했을 때의 기분은?
▲김택수 단장은 『출국시엔 「이기고 돌아가자」라는 선수단 구호만을 생각하고 떠났으나 현지에선 자유스런 분위기를 한껏 누릴 수가 있었다』고 말하면서 떠날 때의 긴장이 한낱 기우에 지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김 단장은 「모스크바」에서 느낀 대표적인 인상은 거리마다 삼삼오오 짝지어 다니는 세계 각국의 여행자 모습인 것이며, 서구풍 옷차림에 머리카락을 휘날리고 다니는 소련여성들의 모습에서 자유로운 생활을 실감할 수 있었다고 밝히고 있다.
그런가 하면 조영자 선수가 받은 인상은 이례적, 『공원 「벤치」에서 남녀 젊은이들이 다정스레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은 어느 곳에서나 볼 수 있었고 비교적 검소한 옷차림 속에서나마 멋을 부린다는 점이 인상에 크게 남는다』고 밝혔다.
반면 남자 선수들의 느낌은 이와는 대조적이어서 선수단 주장인 진준탁 선수는 『소련인들의 인상은 과묵하다』고 평가하는가 하면 이석관 선수는 『거리의 모습이 밝지 않다』고 촌평.
그러나 소련어에 능통한 동완 공보는 이들 남자 선수들과의 의견과 일치하지 않다. 선수단 안에서 혼자 소련어를 할 줄 아는 동 공보는 소련의 모든 사회가 개방되어 있는 것 같다는 말이다.
『남녀교제가 완전히 허용되어 있을 만큼 개방 사회인 것으로 안다』고 말하면서 「모스크바」시외로는 가보지 못했지만 어느 정도 개방된 사회인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이라고 못박았다,

<그림·우표 등 사와>
-「모스크바」에서 사온 선물은 무엇인가?
▲선수들이 가져온 선물은 각양각색. 어느 선수는 목에 걸린 동「메달」을 가리키며 『이보다 더 값진 선물이 또 있겠느냐』는 반문이며 몇몇 선수는 그림·「티·스푼」·목각·우표 등 값이 싼 몇 점씩의 선물을 가져왔다고 밝혔다.
여자 농구주장 강부임 선수는 친지들에게 나누어주기 위해 몇 점의 목각을 가져왔다면서『값은 그리 비싸지 않은 편』이라고-.
김충한 선수는 반지, 김재순 선수는 대리석으로 된 조각, 정경희 선수는 20여장의 그림을 가져왔으며 손영완 「코치」·박지국 심판 등 남자임원들은 「넥타이」를 사왔다고 알려줬다. 그밖에 우리 선수사이에서 가장 인기 있는 선물은 소련의 명승지가 그림으로 담겨있는 「티·스푼」-.
대부분 몇 점씩은 샀을 것이라는 어느 임원의 귀띔이다.

<첫발 디딜 때 긴장>
-「모스크바」에서 느낀 가장 감격적인 순간은?
▲선수들 대부분은 여자농구가 동「메달」을 차지한 후에 거행된 시상식이었다고 말했다.
그런가 하면 몇몇 선수들은 긴장 속에 「모스크바」공항에 첫발을 내디딘 순간이었다고-.
배구 심판이었기 때문에 「스탠드」에서 여자농구 시상을 조용히 지켜볼 수 있었다는 박지국씨는 『소련과 미국기에 이어 태극기가 게양된 순간의 감격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며 지금까지도 감격적인 표정-.
「테니스」의 이덕희 선수도 여자농구의 시상식 광경은 살아 있는 한 잊을 수 없다는 것이며 강필승 감독은 『그런 순간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김건봉 선수는 「모스크바」공항에 내리는 순간 『우리 나라 체육인으로서 제일 먼저 이 땅을 밟는구나』하는 감회가 있었다고-.

<육교는 서울 비슷>
-그밖에 인상에 남는 일은?
▲조영자 선수는 「모스크바」에 있는 「레닌」묘라 했고, 박지국 심판은 『배구 경기장만을 신축하고 「유니버시아드」대회를 치를 수 있는 소련의 체육시설이었다』고 체육인답게 말했다.
또 동완 공보는 시내 관광차 들러본 「굼」이라는 백화점이 2층 건물에 지붕을 씌워 놓고 육교로 이어 놓은 것이 서울의 세운상가와 매우 비슷했다고 말했다.
이덕희 선수는 선수촌의 식사가 서울에서 먹는 양식과 조금도 다르지 않아 아무 불편이 없다고 덧붙이는가 하면 이옥자 선수는 『우리 나라 「배지」의 인기가 높아 으레 1대 2나 1대 3으로 교환되어 때로는 어깨가 으쓱해질 때도 있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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