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위 속의 여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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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찌는 듯한 더위로 가로수 잎이 축 늘어진 거리엔 질주하는 차량마저 뜸해 진다.
답답하게 우뚝 서 있는「빌딩」들의 모습은 짜증스럽고 더위를 한층 더해 주는 것 같다.
휴일을 맞아 더위를 피해 사방으로 흩어진 서울 시민들로 한산해진 거리.
「쇼·윈도」를 통해 내다보며 그래도 몇몇 부지런히 걷고 있는 동체에 촛점을 모아 보기도 한다.
이 무더운 여름을 서울에서 네 번째로 맞게됨은 좀더 끈질겨진 나의 개성 있는 성격 탓이라고 자부해 보기도 한다.
철이 변하는 것을 예민하게 표현하는「윈도」를 장식하면서 벌써 4년을 접어들었음을 새삼스러이 되새기며 더위를 잊는 것도 나대로의 피서 법이라고 생각해본다.
수많은 고객들. 교양미가 풍기는 신사 분들에서 알뜰한 주부형의 살림꾼들에 이르기까지 천층 만층의 손님들을 맞으면 어느 때는 보람을 느끼기도 하고 때로는 책상에 엎드려 소리 없이 흐느끼기를 몇 번이나 되풀이하였던가.
더구나 때없이 엄마를 기다리며 집을 지켜야하는 꼬마들 곁으로 만사 제쳐놓고 달러가고 싶은 마음이 앞설 때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방학, 물놀이를 조르는 아이들을 뒤에 두고 집을 나서야 하는 엄마의 마음.
나와 같은 심정을 가진 직업을 가진 엄마들의 생각을 함께 모아보기도 한다. 그래도 엄마를 조금이라도 이해해 주는 큰아이를 기특하게 여기며 동생들에게 믿음직한 형이 될 것을 타이르기도 한다.
한편 아이들에게 자립심을 길러주는 종은 방법이기도 하다는 설을 생각하면 다행스러운 연이라고 나대로의 자부심과 스스로 마음을 위로할 때도 많다.
아직 열기가 가시지 않은 포도 위에 어둠이 내리면 질주하는 차량의 행렬이 한층 더 분주해 보인다. 나는 좀더 나은 내일을 의해 노력할 것을 다짐하며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는다. <김미영(서울 종로구 계동25의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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