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끼리 밥솥 이고 지고 … 양주는 해외여행 인증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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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 전기밥솥

옛날에는 주변에서 누가 해외여행을 갔다 오면 꼭 선물 파티가 벌어지곤 했다. 그렇게 물 건너온 이른바 ‘OO제 OO’는 우리나라 해외여행의 변천사를 설명하기도 한다.

한국관광공사가 벌인 ‘국민해외여행동태조사’에 따르면 1991년 당시 해외 쇼핑품목으로 주류(50.3%)·화장품(50.3%)이 가장 많았고, 전자제품(45.9%)·의류(26.3%)·완구류(25.9%)가 뒤를 이었다. 그 시절 해외여행을 상징하는 소품은 양주였다. 그것도 ‘시바스 리갈’이었다.

1989년 해외여행 자유화 이후 가장 반응이 뜨거웠던 선물은 일제 전자제품이었다. ‘코끼리 전기밥솥(조지루시 제품)’을 양손에 들고 하나는 발로 차며 김포공항 입국장을 통과하는 장면은 당시 해외여행에 대한 국민 인식을 그대로 드러내는 풍경이다. 지금은 보통명사로 통하는 ‘소니 워크맨’도 그 시절 ‘잇 아이템(it item)’이었다.

유럽에도 ‘잇 아이템’이 있었다. 이른바 ‘맥가이버 칼’로 통하는 스위스 군용 칼이다. 칼은 주부도 샀다. 독일제 ‘쌍둥이칼’. 주방에 독일제 ‘쌍둥이칼’ 하나 없으면 주부가 기죽는 시절을 우리는 살았다.

중국에 갔다 온 뒤 주변에 ‘호랑이연고’를 뿌리던 장면도 익숙하다. 호랑이연고는 한때 우리의 만병통치약이자 필수의약품이었다. 동남아시아에 가면 망고·파파야·구아바·람부탄 등 열대과일을 사오던 시절도 있었다. 지금 해외 농산물 반입은 일절 금지돼 있다.

면세점이나 아웃렛의 명품 쇼핑에 열광하는 건 예나 지금이나 바뀌지 않은 풍경이다. 홍콩관광청 권용집 한국지사장은 “요즘엔 명품 브랜드도 브랜드이지만, 한국에서 구할 수 없는 모델이나 로컬 제품 수요가 커지는 추세”라고 말했다.

최승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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