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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빙「무드」속 가열하는 미·소 「하늘의 스파이」전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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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미·소의 해빙「무드」에도 불구하고 양국의 상호첩보활동은 냉전시대를 능가할 정도로 활발하다. 그것은 주로 인공위성을 통한 『하늘의「스파이」행위』에 의해 이루어진다. 「스파이」위성을 통해 양국은 상대의 군사비밀을 거의 남김 없이 빼내고 있다. 따라서 오늘날 상대방 모르게 새로운 무기를 실험한다든지 군사장비를 이동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으로 되어있다.
「스파이」위성의 기능은 다양하다. 「미사일」기지를 탐지하고 군사통신을 기록하며 대기권 핵실험을 탐지한다.
또 비행기 대수 파악,「로케트」의 항로추적은 물론 기상관찰, 세계각국의 농작상황조사까지 담당한다. 위성끼리의 교신·통제·중계도 가능하다.
지난 5년간 소련은 매년 약 30개의 정찰위성을 정기적으로 발사했다. 미국은 같은 기간 평균 5개의 위성을 발사했으나 이것들은 소련 것보다 더 우수하고 수명이 긴 것들이다.
그러나 금년 상반기 중에 양국은 보통 1년분에 해당하는 개수를 다 발사해서 그 열도를 더하고있다. 미·소 양국은 상대방의 위성을 파괴할 능력이 있다. 그러나 양국은 1972년에 타국의 위성활동에 간섭하지 않고 군사활동을 은폐하지 말자는 협정을 체결했지만 인공위성이 은폐지역을 구별해 낼 수 있기 때문에 사실상은 별 의미가 없는 것이다.
정찰위성들은 현재 지하핵실험·잠수함 및 연구소 안의 실험을 제의하고는 거의 모든 것을 다 알아 낼 수 있다.
잠수함의 활동조차도 앞으로 10∼20년 사이에 예외가 될 수 없을 것이라고 한다.
고성능 「레이저」광선을 장치해서 잠수함이 움직일 때 내는 파랑을 측정하면 그 위치를 탐지할 수 있는 연구가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지하「미사일」기지도 기지 안의 열과 그 주위 지열과의 차이를 측정하는 적외선 장치에 의해 탐지해 낼 수 있다.
미국의 정찰위성은 50년대 말엽 미 공군당국의 첫 실험으로 비롯됐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그 기능이 실험된 것은 1962년 소련이 「쿠바」에 1천5백「마일」사정거리의 「미사일」을 설치하는 문제를 놓고 미·소가 핵 대결의 위기를 빚고 있을 때였다.
당시 「케네디」대통령은 소련이 공격해올 경우 미국이 받을 수 있는 위험의 정도를 측정하기 위해 「모스크바」의 대륙간 탄도「미사일」의 규모를 알고자 했다.
이때 정보당국은 소련 전역에 약 4백개의 장거리「미사일」이 있다는 보고를 냈다. 그러나 정찰위성의 측정에 의하면 약 12개밖에 안 된다는 것이었다.
여기에 자신을 얻은 「케네디」는 「쿠바」로부터 「미사일」을 걷어 가라는 대소 강경 입장을 고수할 수 있었고 소련은 이에 굴복했던 것이다.
미·소 양국위성의 기능은 비슷하지만 그 기술은 다르다.
소련의 위성은 우주궤도에 3일 내지 17일 정도에 머무르면 사진 기타 장비를 교체해야 하기 때문에 낙하산으로 귀환해야한다. 따라서 대개 10일 내지 14일간 하늘에 머무른다.
또 지상의 신호대로 움직이지 않을 때가 있고 다른 나라 국경에 착륙할 가능성이 항상 존재하기 때문에 불안한 구석이 있다.
이 때문에 거의 모두 소련위성은 폭발장치를 갖추고 있다. 한 예로 지난 4월 「코스모스」554호를 폭발시킨 것도 지시된 대로 착륙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미국 정찰위성은 임무가 끝나면 대기권에서 불타버리게 되어 있다. 이것은 적국수중에 들어갈 가능성을 예방하기 위한 것이다.
아무튼 오늘의 정찰위성은 우주상공을 자유자재로 날면서 제한 없는 「스파이」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초지구적 무대에서의 신종 첩보활동이다.
결국 1950년대에 미국의 「아이젠하워」대통령이 강대국간의 평화유지를 위해서는 『하늘의 개방』이 필요하다고 역설한 정책은 오늘 미국의 「닉슨」이나 소련의 「브레즈네프」에 의해서 그대로 계승되고 있다. <유·에스·뉴스·앤드·월드·리포트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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