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연기상 수상자만 125명 … 이러고도 연말 대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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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성희
문화스포츠부문 기자

해마다 돌아오는 프로그램이 있다. 가요대전, 연기대상, 연예대상 등 연말 방송 특집들이다. 지상파 방송 3사가 가요·드라마·예능별로 날짜가 겹치지 않게 특별편성한다. 드라마·예능은 1년간 자사 프로그램(출연자)에 대해 시상한다. 예전엔 가요도 시상했는데 요즘은 축하 공연으로 바뀌었다.

 문제는 드라마와 예능 시상 프로다. 어제오늘 얘기도 아니다. 명색이 상인데 출연자(스타) 면 세워주기로 수십개씩 남발하는 바람에 재미도, 권위도 찾을 길 없다.

 가급적 많은 스타들을 시상식장에 모시고 트로피를 안겨주려, 연기상을 장편·중편·미니시리즈·특별기획·일일·단막 등 쪼갤대로 쪼갠다. 그 결과 2013년 연기상 수상자가 3사 합해 무려 125명에 달했다. ‘상속자들’의 이민호는 SBS 연기대상 5관왕에 올랐다. 10대 스타상, 시청자가 뽑은 최고 인기상, 베스트 커플상, 베스트 드레서상, 중편드라마 부문 최우수 연기상이란다. 2명 공동수상도 모자라 MBC 연기대상 황금연기자상은 남·녀 각각 3명씩 공동수상하기도 했다.

 시청자들도 나눠먹기 관행을 아니 시상식장 배우의 모습만 봐도 결과를 짐작한다. SBS 연기대상 미니시리즈부문 최우수연기상 후보에 소지섭과 조인성이 올랐는데, 소지섭이 수상하면 조인성에겐 다른 상이 주어지겠거니 하는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조인성은 특별상을 받았다. 계속 SBS드라마에만 출연했다는 이유다.

 방송사 입장에서야 한 해를 돌아보며 고생한 식구들을 연말 시상으로 격려한다는 데 무슨 문제냐 반문할 수 있다. 어차피 집안행사니 공정성보다 가급적 많은 스타들이 모이는 축제로 봐달라는 것이다. ‘스타=시청률=광고수익’의 실익도 무시 못한다.

 그러나 이런 방송사 집안잔치, 혹은 공로상 배분을 통한 ‘스타관리’ 컨셉트로 연말연시 3~4일간 황금시간대를 도배하는 방송사는 세계적으로 유례없다. 외국에는 눈씻고 찾아보기 힘든 프로다. 해외 방송사의 연말특집은 대부분 특별쇼, 송년행사 중계, 심층기획물 등으로 꾸며진다.

 “궁금하지도 않고 긴장감도 없는 시상식 형식에 국장님, PD님, 대표님 감사하다는 인사를 앵무새처럼 해대는 프로를 수십년간 봐왔다. 이럴 바에는 차라리 정규 방송을 해달라.” 한 시청자가 SNS에 올린 글이다. 김영찬 외국어대 언론정보학부 교수는 “막장논란을 일으킨 MBC ‘백년의 유산’이 올해의 드라마상과 작가상을 수상하고, KBS ‘왕가네 식구들’이 작가상을 받았다니 양대 공영방송사의 작품 보는 안목이 실망스럽다. 드라마의 완성도나 문화적 영향력 보다는 오직 시청률만을 기준으로 삼고있다는 뜻”이라고 비판했다.

 노광우 박사(고려대 정보문화연구소)도 “연말 시상식의 방송사 중심 패러다임이 문제”라며 “지금 시상식은 CJ나 롯데가 자기들이 배급한 영화들만 놓고 후보지명하고 시상하거나 대형 출판사가 자기네 작품을 놓고 ‘올해의 소설’로 수상하는 격”이라고 꼬집었다. 한 해를 되새기는 연말의 황금 같은 시간대. TV 편성의 주인공은 시청자이지 방송사가 아니다. 언제까지 지상파의 집안잔치를 전 국민이 보며 즐겨야 하는 건가.

양성희 문화스포츠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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