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로 본 부시vs후세인] 부시와 복음주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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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악'을 제거하겠다는 기독교의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과, 이슬람의 수호자를 자처하는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

두사람은 세계사의 어떤 라이벌보다 극적인 대립을 연출하고 있다. 기독교와 이슬람의 갈등은 구약(舊約)에서 출발해 중세 십자군 전쟁을 거쳐 21세기의 이라크 전쟁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오전 5시30분. 기도와 성서 읽기로 하루를 시작한다. 7시 전에 출근해 오후 5시30분쯤 퇴근한다. 집무 도중 짬짬이 눈을 감고 기도를 한다. 늦은 저녁까지 집무실에 남아 있는 일은 없다.

주 1회 이상 콘돌리자 라이스 백악관 안보담당관 등 백악관 직원 10여명이 모이는 성경 읽기 모임에 참석한다. 저녁 파티와 외식은 최근 2년 새 손에 꼽을 정도. 술은 입에도 안댄다. 하루 일과는 기도로 마무리한다.

지구상의 유일 초강대국 미국의 최고 지도자 조지 W 부시의 하루 일과는 얼핏 종교 지도자의 하루를 연상케 한다. 일과만 그런 것이 아니다.

"우리는 기도를 통해 전능하신 신에게 우리의 슬픔을 감당해달라고 간구한다."(9.11 테러 직후) "우리가 소중히 여기는 자유는 세계에 대한 미국의 선물이 아니라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선물이다."(2003년 1월 국정연설)

입만 열었다 하면 그의 입에서는 성경 구절들이 튀어나온다. 에이브러햄 링컨에서 지미 카터.로널드 레이건.빌 클린턴에 이르기까지 역대 미 대통령들은 공식 연설에서 성경을 즐겨 인용했다. 하지만 부시처럼 자주, 광범위하게 성경 구절을 인용한 예는 없었다.

근본주의 성격이 강한 복음주의 교파에 속하는 부시의 종교관은 외교정책에서 '선과 악'의 이분법과 '권선징악(勸善懲惡)'적 접근법으로 나타난다.

단적인 예가 9.11 테러다. 부시는 9.11 테러를 계기로 걸핏하면 성서를 인용하고, 악과의 대결을 강조하고 있다.'악의 축'이란 말도 그래서 나왔다.

9.11 테러의 주범인 오사마 빈 라덴이 그렇듯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도 그에게는 악이다. 부시 대통령은 악을 제압하는 것이 자신에게 부여된 신의 소명이라고 믿는다.

부시는 2001년 1월 취임한 지 사흘 만에 개도국의 가족계획사업을 지원하는 단체들에 대한 국가지원을 금지하는 정책을 발표했다.

대신 종교단체들을 지원하는 '종교지역사회계획국'을 백악관에 신설하고 9.11 테러 직후에는 '대통령과의 기도 모임'이라는 일종의 '친위대'를 만들었다. 현재 회원만 1백만명이 넘는다.

종교적 색채가 짙은 이러한 정책의 이면에는 부시의 대통령 당선에 결정적으로 기여한 남부 우파 기독교연합에 대한 배려가 깔려 있다.

박소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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