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이 개인의 재주 자랑하는 장 돼선 안 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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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호 회장은 “경로당이 깨끗하니 노인들 옷차림도 단정해졌다”고 했다. [오종택 기자]

지난달 13일 서울 강북구의 한신경로당이 리모델링 완공식으로 떠들썩했다. 불편한 문턱도 없어졌고, 안전손잡이도 설치됐다. 말끔한 붙박이 가구도 생겼다. 경로당 안팎의 색깔도 밝고 환하게 바뀌었다.

 몸이 불편한 노인들을 위해 경로당 리모델링을 추진한 건 한국실내건축가협회(KOSID) 회장인 김종호(50) ‘디자인스튜디오’ 대표.

지난해 제18대 협회장으로 취임한 그는 “협회가 자신들의 이익을 주장만 할 것이 아니라 재능기부 등을 통해 사회에 돌려주는 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이 일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고양 송산중에선 직업교육을 했고, 서울 용산국제학교의 타일벽화 제작 자문에도 응했다. 올해도 재능기부는 계속된다. 협회 회원은 1800여 명. 국토교통부 산하 단체로 올해로 창립 35주년을 맞았다.

 - 경로당 분위기가 확 변한 것 같다.

 “노인들에게 맞는, 편안하고 즐거운 생활 공간이 되도록 신경썼다. 낡은 화장실과 주방, 식당을 고쳤다. 노인들께서 눈물까지 글썽이며 좋아하시는 모습에 보람이 컸다. 환경이 깨끗해지니, 몸가짐이 바르게 되고 옷매무새도 가다듬게 된다고들 하시더라. 공간은 삶에 큰 영향을 미친다.”

 김 회장은 미국 유타주립대와 코넬대학원, 미시간대학원을 나왔다. 1989년과 90년 뉴욕주 설계 공모전에서 최우수상을 받았다. 2004년에는 전미인테리어디자이너협회(ASID)가 발간하는 『세계의 뛰어난 디자이너들(Great Designers of the World)』라는 책에 한국인 최초로 소개됐다. 99년 공간디자인 사무실 ‘디자인스튜디오’를 설립해 베트남 인터콘티넨탈 호텔, 서울 강남역 GT타워, 삼성동 아이파크 펜트하우스, 현대산업개발 삼성동 사옥, 호텔 파크하얏트 서울·부산 등의 주거·사무 공간을 디자인했다. 2011년 건축가를 지망하는 후배들을 위한 조언을 담은 책 『멀리 보고 천천히 뛰어라』를 펴내 건축계 멘토로 주목받았다. 그는 후배들을 만날 때마다 “꼭 디자이너가 되지 않아도 좋다. 어느 분야에서 일을 하든 디자인적인 사고를 하라”고 강조한다.

 그가 말하는 디자인적 사고란 ‘기존의 패러다임을 뛰어넘는 사고’다.

 “디자이너는 나만의 패러다임을 창조해야 한다. 그리고 자신의 일에 대해 스토리텔링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재미도 있다.”

 그는 한국 디자인 교육 문제점도 여기에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의 교육은 지나치게 테크닉 중심이다. 스토리텔링에는 인문학적 사고가 바탕이 돼야 한다. 그래야 깊이와 창의성이 생기고 글로벌 경쟁력도 나온다. 세계 무대에서 한국 디자이너들은 좋은 작품을 내놓고도 설명을 제대로 못해 불이익을 당하곤 한다.”

 - 좋은 디자인이란 뭐라고 보나.

 “디자인은 그 안에서 생활하는 사람으로 인해 완성된다. 그러니 그들이 원하는 디자인, 행복할 수 있는 디자인이 돼야 한다. 디자이너 개인의 재주를 자랑하는 장이 돼선 안 된다.”

 - 후배들에게 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겸손해야 한다. 잡지에 한두 번 나왔다고 해서 착각해선 안 된다. 꾸준히 내공을 쌓아야 한다.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마음을 다해서 완성해라. 일이 일을 부른다. 작은 일이라고 대충한 사람이 큰 일이라고 해서 잘할 리 없다. 너무 빨리 성공하려고 하지 말아라. 그러다보면 자신과 주변을 모두 망치게 된다. 능력보다 부풀려진 명성은 오래 못가게 마련이다.”

글=박혜민 기자
사진=오종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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