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공지도층 세대교체 이뤄질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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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중공지도자들은 올해 안으로 문혁 때문에 손상되었던 국가·당체제를 완전히 가다듬으려는 것 같다. 중국공산당 제10차 전국 대표대회(십전대회)와 제4차 전국인민대표대회의 소집이 임박했다는 갖가지의 조짐은, 바로 국가·당 체제의 정비 작업을 마무리 짓겠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중국공산당은 문혁기간 중 소위 「실권파의 소굴」로 지탄받아 사실상 그 권력을 혁명위원회에 넘겨줬었다.
혁명위가 주선했던 69년 4월 구전대회 후 70년 11월에서 다음해 8월 사이에, 성급당 위원회의 재건작업이 일차 이뤄졌었으나 71년9월의 이른바 「임표파동」으로 인해 당은 다시한번 혼란의 소용돌이에 빠졌던 것이다.

<「8월 개최설」 나돌아>
임호파동의 후유증은 거의 1년 가까이 계속되었다. 3대 지지가 「당 우위원칙」에 관한 사설·논문의 게재를 중지한 것이 72년 10월께부터였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
어쨌든 「8월 개최설」이 강력하게 나도는 십전대회는 일단 형해화 되었던 당이 극좌파의 축출(70년 8월·진백달 등) 과 군부과격파의 실각(71년 9월·임표 등) 이라는 우여곡절을 거친 끝에 비로소 제대로의 모습을 갖추는 커다란 분기점이 되는 셈이다.
지난 3월 10일 요령성 공청(공산주의청년단)대회가 개최된 이래 북경공청(4월 2일) 강소성 공청(4월 5일) 등 다른 지역의 공청대회가 잇달아 열렸던 사실은 십전대회의 소집 임박설을 충분히 뒷받침해 주는 자료라 할 것이다.
전국 인민대표대회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이미 70년부터 시작된 제4차 5개년 계획의 승인, 사회주의 헌법의 채택. 통폐합된 각종 행정기구의 추인 등 의회가 처리해야할 일거리들이 산더미처럼 쌓였는데도 실권파 및 극좌파 들의 제거 공작 때문에 계속 미뤄왔던 것이다.
그러나 지난 1월 27일 인민일보가 부녀간부의 양성을 1면 톱으로 호소한 이래 전국인민대표대회의 지방대회 인선공작은 활발히 전개되어 왔던 것 같다.

<성급선 소집 준비 끝내>
이 공작 역시 쾌속도로 진전되어 3월 14일에는 소수민족의 청년·부녀조직 강화를 호소하고 1주일 후에는「노인·중년·청년」의 「신3 결합」 호소로 확대되어갔다.
따라서 이와 같은 일련의 움직임과 등소평의 복권 및 전국인민대표대회의 개최임박을 암시한 주은래발언 등을 종합해보면 성급에서의 인민대표대회 소집 준비는 이미 끝났다고 판단되는 것이다.
그러나 십전대회와 제4기 전국 인민대표대회의 개최를 앞두고 가장 흥미를 끄는 점은 이 두개의 대회를 통해 중공지도층의 전면적인 세대교체가 이뤄지지 않을까 하는데 있다.

<강청의 서열 알쏭달쏭>
물론 사회주의헌법의 채택도 확실시되고 「정병간정」에 입각한 당·행정기구의 간소화 작업도 이뤄지겠지만, 전자는 소련이나 동구공산국·북한 등의 선례가 있으므로 특히 주목할 거리는 못 되고 후자는 문혁 말기에 이미 충분히 보아왔기 때문이다.
어쨌든 임박한 두개의 대회를 통해 「문혁 기린아」들에 의한 세대교체가 이뤄질 것이라고 가정한다면 대체로 다음과 같은 질문이 제기 된다.
문혁소조 출신의 신세대가 단번에 당 주석이나 국가주석을 선양 받을 것인가, 아니면 주은래가 이끄는 고령의 중간세대에 선양권을 빼앗길 것인가 하는 점이다.
참고삼아 현재 활동중인 중공 지도자들의 공식 서열을 지난 4월 13일자 인민일보의 시아누크 환영식 기사를 통해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주은래·엽검영·장춘교·도문원·이선념 ·기등규 ·이덕생·왕동흥·왕홍문·화국봉·등유소(주의 처)·서향전·곽말약·이부춘·견영진·등소평.
당연히 고려되어야 할 사람 중 여기에 불참한 인사는 모의 처인 강청인데 강의 서열은 주은래보다는 아래이나 엽검영 보다는 앞서기도 하고(2월 2일자)뒤지기도 한다(3월 13일자).
어쨌든 현재 공석중인 국가주석을 뽑거나 모가 맡고있는 당 주석을 새사람에게 넘겨줄 경우 그 이름은 위에 적힌 인사 가운데서 나와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임표 실각 후 크게 부상한 엽검영은 주와 동갑인 75세이므로 모기주석·주 수상의 현 전선이 그대로 계속되지 않는 한 그가 국가주석에 선출될 가능성은 없다.

<엽검영은 늙어 해외>로
다시 말해서 만약 모가 에드거·스노에게 술회했던 대로, 또는 주가 여러 사람들에게 암시했던 대로 그들이 죽기 전에 신세대에의 선양을 단행한다면, 임박한 두개의 대회야말로 그것을 위해 계획된 포석으로 봐야하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그리고 앞서 지적했듯이 엽검영을 일단 제쳐놓을 수밖에 없다면 그 다음은 장춘교·도문원 등 「문혁 기린아」의 차례가 되는 것이다. 경솔을 각오하고 말한다면 국가주석과 당 주석은 장·도 두 사람이, 수상은 주의 오랜 보필자였던 당년 67세의 이선념이 기등규의 보좌를 받으며 각각 물려받게 되리라고 짐작된다.
이와 같은 추측은 73년 1월에서 4월까지 이들이 공개석상에 등장했던 횟수로 봐도 수긍이 간다(별표참조). 횟수표와 관련해서 한가지 주의해야 할 점은 도문원의 등장은 매우 중요한 외국인사 특히 당대표의 영접에 집중해 있는 반면 장춘교는 외국원수의 출영과 같은 의례적인 일에 자주 동원되며 기등규는 이선념과 마찬가지로 행정적인 업무에 자주 나타난다는 사실이다.

<사회주의혁명의 임무>
또 올해 들어 활동이 두드러지고 있는 왕홍문은 원래 상해시 혁명위 부주임으로 말하자면 장·도의 막하였다. 이것은 장·도 2인의 영향력을 저울질 할 수 있는 훌륭한 증거로서 계산될 수도 있을 것이다.
어쨌든 올해 안으로 개최될 공산이 큰 십전대회와 제4기 전국인민대표대회는 체제정비와 함께 지도층의 세대교체까지 해치울 가능성이 매우 짙다 하겠다.
모-주 체제가 신민주 주의혁명의 완결에 만족, 사회주의 혁명 임무를 중국 고유의 선양에 의해 새 세대에 맡긴다는 것은 충분히 있음직한 일인 것이다.<홍사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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