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아누크는 복권될 것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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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미국의회가 설정한 8·15 크메르 단폭시한의 박두는 닉슨 미국 행정부로 하여금 어느 방향으로든 단안을 재촉케 하고 있다. 닉슨 정부 앞에는 몇 가지 안이 기다린다. 첫째가 8·15단폭시한 후에도 의회의 승인을 얻어 론·놀 크메르 정부군을 위한 미 공군의·폭격을 계속하는 방안이며, 둘째가 소련과 중공의 명시적 또는 암시적 협조를 얻어 론·놀 친미중립 정권을 퇴임시키고 시아누크 전 캄보디아 국가원수를 영입하는 길이다. 세째 길은 론·놀 체제를 유지하면서 공산 측과 형상휴전으로 유도하는 것이며 네째는 미 공군을 그 지역에서 철수시키고 월남공군으로 하여금 미국의 대역을 맡게 하여 현재와 같은 군사정세를 끌고가는 방안이 있다.

<8·15후 폭격은 안될 듯>
의회의 새로운 승인을 얻어 폭격을 계속하는 방안은 비둘기파 세력이 극히 우세한 미국의회의 현재의 판도로 보아 닉슨 정부에는 대단히 취하기 힘들 것 같다. 닉슨 대통령은 8·15 단폭이라는 의회의 타협안에 동의하였을 때 필요하면 8·15이후에도 폭격을 계속할 수 있도록 의회의 승인을 그때그때 요청하겠다고 말하여 함축성 있는 시효를 하였으나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궁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그로서는 의회와의 대결에서 반드시 승산이 있다고 볼 수 없다. 좀더 두고 보아야할 방안인 것 같다.
론·놀을 버리고 다시 시아누크와 화해를 모색하는 둘째 안에 닉슨 정부는 크게 구미를 당기고 있는 것 같다. 미국이 손수 키우다 시피한 론·놀 정권을 이용가치가 없다고 해서 하루아침에 포섭해 버릴 경우 미국은 자유세계 지도국으로서 우방국에 대한 신용과 공약을 여지없이 짓밟았다는 비난을 감수해야 한다.
닉슨이 40분간의 회담을 위해 대통령 특별기까지 동원, 워싱턴에서 샌클러멘티의 서부 백악관으로 주미중국영합사무소장 황진을 초빙한 것은 크메르 문제 해결에 있어 닉슨이 중공의 협조를 얼마나 진격하게 갈망하고 있느냐는 단적인 반증으로 볼 수 있다. 닉슨 대통령의 안보문제 담당 특별보좌관 키신저 박사의 8월에 있을 북경 방문에서 주로 다루어질 의제의 하나도 크메르 문제인 것은 분명하다.

<시아누크 전역을 중시>
키신저는 현재 북경에 망명중인 전 캄보디아 국가원수 시아누크와도 회담하여 크메르 문제를 협의할 가능성이 크다고 관측통들은 보고 있다. 미국은 지난날 라오스에서도 수바나·푸마 수상이 친공적이라는 이유로 축출했다가 4년 후 다시 중립정부 수반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그를 권좌에 복귀시킨 전례가 있다.
시아누크는 중공과 소련에서 다같이 친 공적인 것만도 아니라는 그의 전역을 미국 정부는 중시하고 있는 듯하다. 시아누크는 지난날 캄보디아를 통치하고 있을 때 순전히 실리만을 추구한다는 현실적인 정책을 표방하면서 공산세력이 증대하면 우경노선으로 기울고 우파 세력이 파대해지면 좌파세력으로 급선회하는 식의 이른바「줄타기 정책」의 명수로 알려 졌었다. 한가지 시아누크의 약점은 그가 크메르의 모든 공산 세력의 광범한 지지를 받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다.
이 소국의 공산세력은 4분5열 되어 있어 실질적인 영도자를 배출하지 못하고 있다. 최근 주한 크메르 대사 폭·티운씨는 기자들에게 시아누크는 모든 공산세력의 대표가 아니기 때문에 크메르 정부는 그와 협상 할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시아누크가 모든 공산세력의 대표자가 아니라는 약점은 그에게는 『 「아킬레스 의 발꿈치』 인 것이다. 그러나 어쨌든 시아누크 만한 간판도 공산세력에는 없다는 것이 그의 강점이고 미국이 그와 손을 잡으려는 명분과 실리의 근거가 되고 있는 것이다. 다수의 외교관측통들이 미국은 론·놀을 버리고 시아누크를 옹립하리라고 예측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인 것이다.

<중·소와 화해가 큰 작용>
더우기 미 소, 미·중국간의 해빙 무드의 급진전은 시아누크 영도하의 중립연정구상에 유리한 작용을 하고 있다. 소련 공산당 서기장 브레즈네프는 얼마 전 소련을 방문한 월맹대표단에 월남 휴전을 잘 준수토록 종용하였는데 이는 소련은 크메르가 하노이의 절대적 지배하에 들어가는 것을 그리 탐탐하게 여기지 아니한다는 뜻을 간접적으로 암시한 것이라고 볼 수도 있지 아니할까? 론·놀 체제를 유지하면서 현상휴전으로 유도하자는 제3안은 현재까지의 경과로 보아 몹시 힘드는 작업이 될 것이다. 국토의 대부분을 점령하고 있고 마음만 먹으면 크메르 수도 프놈펜도 단숨에 장악 할 수 있는 공산 측이 현상휴전에 단호히 반대하고 있다. 8·15후 월남공군으로 하여금 미국의 대역을 맡게 하자는 제4안은 불완전한 월남 휴전을 송두리째 파괴할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월남공군이 크메르군 지원에 나설 경우 월남안의 월맹군은 활동을 에스컬레이트 할 것은 명백하니 미국으로서는 혹 떼려다 혹 붙이는 우를 범할 것이다. 4가지 방안 중 시아누크와 화해하는 제2안이 가장 현실가능성이 많은 것으로 관측통들은 점치고 있으며 닉슨 정부로서도 그 길만이 가장 손쉬운 방안으로 예의 고려하고 있는 듯 하다.
의회의 압력으로 발이 묶인 닉슨은 폭탄과 당근 중 택일하라는 종래의 전법을 더 이상 쓸 수 없는 길목에 접어들고 있다. 키신저의 중공방문이 끝나야 크메르 사태해결을 위한 청사진은 더욱 선명해질 것 같다. <신상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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