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상부 포스코회장 돌연 사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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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임이 유력시되던 포스코 유상부(劉常夫) 회장이 주총을 하루 앞두고 이를 포기,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劉회장은 지난달 18일 이사회를 전후해 연임 포기 압력을 받을 때부터 "원칙대로 주주들의 심판을 받겠다"며 주총 때까지 물러서지 않겠다는 의지를 굽히지 않았다.

여기에 대부분의 기관투자가도 그의 연임을 지지하는 분위기여서 劉회장의 연임이 유력하던 상황이었다. 이에 따라 그의 전격적인 사퇴는 정부의 전방위 압력에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굴복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짙다.

업계에서는 劉회장의 연임 포기는 개인의 능력과 자질을 떠나 민영화된 공기업의 한계를 상징적으로 드러낸 사건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왜 사퇴했을까=劉회장은 이날 윤석만 전무가 대신 발표한 자료에서 "포스코의 진정한 도약과 발전을 바라는 스스로의 충정에서 나온 것"이라고 사퇴의 변을 밝혔다.

하지만 지난 10일 마감된 기관투자가의 의결공시에서 80% 이상이 劉회장 연임을 찬성하고 전체 지분의 61%를 가진 외국인 주주를 대표하는 새무얼 슈발리에 사외이사도 최근 劉회장의 경영 성과를 높이 평가한 점 등을 감안하면 설득력이 없다.

업계에서는 이러한 결정이 노무현 대통령 당선 이후 포철 회장을 바꾸려는 새 정부 측의 전방위 압력에서 비롯됐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전윤철(田允喆)전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이 "포스코 회장제는 옥상옥 (屋上屋)으로 잘못된 일"이라고 지적하는 등 사퇴 압력이 끊이지 않았다. 산업자원부 고위 관료가 지난달 18일 이사회를 앞두고 포스코를 찾아와 이사회 연기와 劉회장 자진 사퇴를 종용했다는 설도 흘러나왔다.

산자부 관계자는 지난 10일 "劉회장 문제는 그의 선택만 남았다. 이미 정부 내부에서는 다 끝난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또 업계에서는 최근 금감원이 한 민간 기업과 포스코를 내사한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이 풍문이 사실이라면 이에 불안을 느낀 劉회장이 주총을 하루 앞두고 '포스코를 위해'긴급히 사퇴 발표를 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업계 관계자는 말했다.

이런 정황으로 볼 때 새 정부는 민영화된 기업에 대한 '신(新) 관치'라는 비난에서 자유롭기 힘든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포스코의 한 사외이사는 "劉회장이 사퇴함에 따라 민영화된 포스코의 1만9천명 직원은 상사보다 정부 쪽을 쳐다보는 부작용을 안게 됐다"고 말했다.

또 劉회장의 사퇴는 이미 劉회장 연임을 찬성한 국내외 기관투자가 및 외국인 주주들의 의사 결정을 완전히 무시한 것이어서 포스코뿐 아니라 국내 기업 전체에 대한 대외 신뢰도의 실추가 우려된다. 또 劉회장 개인도 자신의 의지를 끝까지 지켜내지 못했다는 비난을 면할 수 없게 됐다.

하지만 포스코 일각에서는 劉회장의 연임을 반대하는 의견도 있었다. 지난해 4월 劉회장이 정치권의 요청으로 포스코 계열사와 협력사에 타이거풀스 주식을 매입토록 한 것이 치명적인 흠으로 꼽히는 것이다. 타이거풀스 사건은 오는 25일 증인 신문을 앞두고 있다.

◆포스코 경영체제 어떻게 되나=포스코는 劉회장 사퇴 이후 조직의 안정이 가장 중요하다고 보고 이구택 회장으로 체제를 구축했다. 포스코 고위 관계자는 "이구택 현 사장을 회장으로 승진시키는 내용을 14일 이사회 안건으로 채택했다"며 "이른 시간 내에 흐트러진 조직을 추스르는 게 최대 현안이라는 데 이사회 멤버들의 의견이 일치했다"고 전했다.

이 같은 결정의 배경에는 포스코가 10개 이상의 자회사를 거느리고 있어 회장 없이 대표이사 사장만으로 꾸려가기가 쉽지 않다는 측면도 있다. 또 회장직을 공석으로 둘 경우 외부 인사가 입질을 할 여지가 있어 이를 막아야 한다는 생각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포스코는 또 조직 안정을 위해 14일 주총.이사회 후 劉회장 퇴임식을 열고 15일 오전 신임 회장 취임식을 하기로 하는 등 속전속결로 이 사태를 마무리하겠다는 입장이다.

李사장은 경기고.서울대 금속공학과를 졸업하고 1969년 신입사원으로 포스코에 입사, 경영정책부장.포항제철소장(부사장)을 역임한 철강 전문가다.

이영렬.김창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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