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에 장애 안되고 다수회원국 뜻이라면 남·북한 유엔 동시가입 반대 않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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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박정희 대통령은 23일 상오「평화통일외교정책에 대한 특별선언」을 발표했다. 7개항의 이 외교정책선언에서 박대통령은 『국제연합의 다수회원국의 뜻이라면 통일에 장애가 되지 않는다는 전제아래 우리는 북한과 함께 「유엔」에 가입하는 것을 반대하지 않으며 「유엔」가입전이라도 대한민국 대표가 참석하는 「유엔」의 한국문제토의에 북한측이 갈이 초청되는 것을 반대하지 않는다』고 선언했다. 박 대통령은 상오10시 전국에 방송된 TV를 통해 『긴장완화에 도움이 된다면 북한이 우리와 같이 국제기구에 참여하는 것을 반대하지 않는다』고 천명했으며, 그러나 『북한관계정책은 통일이 성취될 때까지 과도적 기간중의 잠정조치로서 이는 결코 우리가 북한을 국가로 인정하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해둔다』고 못박았다. 박대통령은 선언에서 『우리는 모든 국가에 문호를 개방할 것이며 우리와 이념과 체제를 달리하는 국가들도 우리에게 문호를 개방할 것』을 촉구했다. 박 대통령은 『북한은 밖으로는 조국의 분단을 고정화시키는 행동을 계속해옴으로써 남북대화는 난관과 긴 시일이 소요되리라고 판단된다』면서 『조국이 처해있는 내외 정세 속에서 이와 같은 정책이 민족의 위신과 긍지를 유지하면서 통일을 성취하는 지름길로 확신한다』고 말했다. 이 자리에는 전 국무위원이 배석했다. (선언전문은 별항)

<7개항 평화통일 외교정책>
1, 조국의 평화적 통일 은 우리 민족의 지상과업이다. 우리는 이를 성취하기 위한 모든 노력을 계속 경주한다.
2, 한반도의 평화는 반드시 유지되어야하며, 남북한은 서로 내정에 간섭하지 않으며, 침략을 하지 않아야 한다.
3, 우리는 남북공동성명의 정신에 입각한 남북대화의 구체적 성과를 위하여 성실과 인내로써 계속 노력한다.
4, 우리는 긴장완화와 국제협조에 도움이 된다면 북한같이 국제기구에 참여하는 것을 반대하지 않는다.
5, 국제연합의 다수회원국의 뜻이라면 통일에 장애가 되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우리는 북한과 함께 국제연합에 가입하는 것을 반대하지 않는다. 우리는 국제연합 가입 전이라도 대한민국 대표가 참석하는 국제총회에서의 「한국문제」 토의에 북한측이 같이 초청되는 것을 반대하지 앉는다.
6, 대한민국은 호혜평등의 원칙 하에 모든 국가에 문호를 개방할 것이며, 우리와 이념과 체제서 달리하는 국가들도 우리에게 문호를 개방할 것을 촉구한다.
7, 대한민국의 대외정책은 평화선린에 그 기본을 두고 있으며, 우방들과의 기존 유대관계는 이를 더욱 확고히 해 나갈 것임을 재 천명한다.

<특별선언문 전문>
친애하는 5천만 동포여러분!
나는 오늘 우리가 그동안 추진해 온 남북대화의 경험과 국제정세의 추이에 비추어 민족의 숙원인 조국통일의 여건을 실정 적으로 개선하기 위한 우리의 평화통일 외교정책을 내외에 천명하고자 합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우리는 해방이 되었으나 우리의 의사에 반하여 국토는 양단 되고 민족은 분열되었습니다.
당초 일본군의 항복을 받기 위한 군사적 경계선이라고 하던 38선이 그후 철의 장막으로 변하고 남과 북은 정치·경제·사회·문화 모든 분야에 걸쳐서 완전히 차단되어 버렸습니다.
그동안 미·소 공동위원회가 개최되어 38선의 해소와 통일민주정부수립을 위한 교섭이 있었으나 미·소간의 근본적 대립으로 실패에 돌아가고 결국 한국문제는 국제연합에 제기되었던 것입니다.
1947년 제2차 국제연합총회는 남북한을 통한 자유로운 총선거의 실시를 결의하고 이를 위해 임시 한국 위원회를 파견하였습니다.
그러나 북한의 거부로 남한에서만 자유선거가 실시되어 1948년8월15일 대한민국정부가 수립되고 국제연합에 의하여 유일한 합법정부로 승인 받게 된 것입니다.
1950년6월25일, 북한공산군의 불의의 침략으로 인한 한국동란으로 무수한 동포가 생명을 잃고 전 국토는 초토화되었으며 3년간의 전란 끝에 휴전은 성립되었으나 분단은 계속 되고 통일은 요원해졌습니다.
나는 이 분단으로 말미암은 동족의 고통을 덜고 평화통일의 기반을 조성하기 위하여 1970년 「8·15선언」에서 남북한간의 긴장완화를 촉구하였습니다. 그 다음해 8월12일 우리측은 남북적십자회담을 제의하였으며 작년 7월4일에는 평화통일을 위한 남북공동성명을 발표한 바 있습니다.
이리하여 남북대화는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근2년이 되는 오늘에 이르기까지 그 성과는 우리 기대와는 거리가 먼 것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용역하고 실천 가능한 문제부터 하나씩 해결해 나감으로써 남북간의 장벽을 점차 제거하고, 구체적인 실적을 통해서 상호간의 불신을 신뢰로 대체해 나가는 것이 대화를 생산적으로 구영하는 길이며, 평화통일을 성취하는 지름길이라고 주장해왔습니다.
그러나 북한측은 불신요소를 남겨둔 채 대한민국의 안전보장을 위태롭게 할 군사 및 정치문제의 일괄선결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북한측은 통일을 위한 남북대화의 진행 중 밖으로는 사실상 조국의 분단을 고정화시키는 행동을 계속하여 왔습니다.
이러한 남북관계의 현상으로 보아 우리가 기대하는바 남북대화의 결실을 얻기까지에는 앞으로도 많은 난관이 예견되며, 상당히 긴 시일이 소요되리라고 판단됩니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상태가 그대로 방영된다면 결과적으로 불신의 심화와 긴장이 고조마저도 우려되는 바입니다. 한편 최근의 국제정세는 제2차 세계 대전후의 냉전시대가 끝나고 현상유지를 기조로 하는 열강들의 세력균형으로 평화공존을 유지하려는 것이 그 주된 조류라 하겠습니다. 또한 그간 이 지역에 있어서의 일련의 주변정세의 발전으로 미루어 보아서도 국토통일이 단 시일 내에 성취되기는 어렵다고 보여집니다.
이러한 국제정세는 우리 민족사에 있어서 하나의 커다란 문제를 제기하고 있습니다. 즉 조국통일이라는 민족지상의 염원과 목표를 국제정세의 현실 속에서 어떻게 추구할 것인가의 문제입니다.
친애하는 5천만 동포 여러분,
우리는 객관적 현실에 대하여 능동적으로 대처해나가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조국통일을 국내외의 현실 속에서 실현하는 자명하고도 확고한 방안을 수립하고 이를 강인하게 추구해 나가야 하겠습니다.
그것은 곧 현실을 직시하고 평화를 이 땅에 정착시킴으로써 그 바탕 위에서 우리의 자주역량으로 통일을 기필코 이룩하자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이에 다음과 같은 정책 (별항)을 선언하는 바입니다.
나는 이상에서 밝힌 정책 중 대북한 관계사항은 통일이 성취될 때까지 과도적 기간중의 잠정조치로서 이는 결코 우리가 북한을 국가로 인정하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하여 둡니다.
친애하는 남북동포 여러분,
나는 우리 조국이 처해 있는 오늘의 내외정세를 냉엄히 평가할 때 이 길만이 긴장완화의 국제조류 속에서 민족의 위신과 긍지를 유지하면서 조국의 평화통일을 자주적으로 성취하는 지름길이라고 확신합니다.
슬기롭고 용감한 민족 앞에는 결코 실망이나 좌절은 있을 없습니다. 우리 모두 희망찬 용기와 슬기로 한반도의 평화, 겨레의 번영, 그리고 조국통일을 위해 힘차게 매진합시다.
1973년6월23일 대통령 박정희

<해설>분단심화 깨는 진취적 결단|북한의 호전성 순화할 계기로
박정희 대통령이 6·23특별선언에서 밝힌 통일외교정책의 지표는 현실적 여건에 맞추어 자주적으로 정책을 전환시킨 결단이며 북한에 대해 평화의 압력을 가증한 통일성취를 위한 포석이다.
3년 전「8·15선언」으로 남북관계의 개선과 실질적 평화통일 의 방향을 천명했던 박대통령은 이번「평화통일 외교선언」을 통해 상국통일을 위한 현실적인 접근 책을 제시한 것이다.
전후의 냉전체제에서 벗어나 화해와 평화공존을 지향하는 국제조류에 발맞춘 소산이 「8·15선언」이었다면 「6·23선언」은 이를 한층 구체화시켜 우리의 외교방향 뿐 아니라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평화를 고착시키려는 우리의 노력을 보다 높은 차원으로 고양 발전시킨 새로운 전기를 마련한 것이다.
박대통령의 특별선언은 민족분단을 고정화시키고 심화시킨 책임은 공산주의자들이 져야한다고 지적했다.
그것은 47년 「유엔」결의에 의한 「유엔」 감시하의 남북한 총선거 안에 반대함으로써 통일의 기회를 잃게 했을 뿐 아니라 6·25남침으로 민족분단을 한층 심화시킨 것은 북한공산주의자들이었기 때문이다.
「8·15선언」→남북적십자회담제의→이후낙 중앙정보부장의 파북으로 이어지는 박대통령의 평화통일 노력으로 남북은 대화의 문을 열기는 했지만 북한측은 이 귀중한 대화의 시간마저 국제사회에서 상국분단을 기정화 하는 기회로 역이용했던 것이다.
박 대통령이 지적한바와 같이 이런 상태가 그대로 방치된다면 불신의 심화와 긴장의 고조마저 우려되는 상황에서 현실을 타개하기 위한 돌파구가 불가피하게 요구되었다. 더욱이 평화공존·긴장완화라는 국제조류는 분단국가에 대해서는 현상유지를 강요하는 측면이 있었기 때문에 평화통일외교선언은 바로 그 괴리의 극복인 것이다.
워낙 중대한 정책전환이기 때문에 정부는 그 동안 극비리에 각계의 의견을 충실하게 취합해 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정책수립과정에는 공화당과 유정회 소속 국회의원 뿐 아니라 야당의 일부전문가·학계의 몇몇 수수들이 참여했으며 언론계의 몇 분도 의견을 표시해주었다』고 관계자는 설명하고있다.
주한외교사절에 대해서는 21, 22 양일간 개별적으로 통고, 협조를 구했으며 박대통령의 유진산 신민당총재면담에서도 이 문제가 거론됐다.
극우적인 입장이나 감상적 차원에서 민족주의를 생각하는 사람은 이 같은 정책전환이 통일이념과 상충된다고 볼지 모르나 각계의 의향타진에서는 『현실을 현실대로 본 용기의 표시이며 통일목표를 향해 한걸음 내디디는 것』으로 평가된 것으로 알려졌다.
남북한 「유엔」동시가입의 경우 불가피하게 제기될 「두개의 한국」문제는 휴전선 이북지역을 사실상 지배하고 있는 정권이 있다는 현실만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민족의 평화통일 염원에 비추어 북한을 하나의 국가로 인정할 수 없음을 박 대통령도 명백히 했다.
「브란트」의 동방정책이 『두개의 독일, 두개의 국가, 두개의 정부』인 것에 비해 우리는 『한민족, 한 국가, 두개의 사실상의 정부』를 모방하는 셈이 된다.
북한이 「유엔」에 가입한다면 결과적으로 그들이 「유엔」의 권위와 권능을 인정한 결과가 되며 「유엔」의 권위·권능을 존중하도록 촉구하는 것이 된다. 또 북한의 국제기구참여로 그들의 호전성을 국제사회에서의 「매너」나 「룰」을 통해 순화시키는 효과도 있다.
호혜평등의 원칙 하에 모든 국가에 문호를 개방한다는 정책천명은 이미 모삭되어 온 것이지만 공식적으로 지침화 되었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크다. 이것은 소련 .중공을 비롯한 어떠한 국가와도 관계개선을 하겠다는 진취적 개방외교의 단안이다. <이억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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