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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대학생 칼럼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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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신지아
성균관대 경제학과 4학년

크리스마스이브. 추운 날씨 속 서울 광화문 광장에는 시민 1004명이 모였다. 나 또한 그중 한 명이었다. 어려운 형편의 아이들을 위해 산타로 변신한 것이었다. 일일 산타는 대학생, 청소년, 직장인, 외국인 등 다양한 사람들이었다. 그렇게 모인 산타들은 밤이 어둑해질 무렵 선물을 한 아름 안고 서울의 각 지역으로 흩어졌다.

 그런데 수혜자의 가정에 막상 도착했을 때 우리는 조금 당황스러웠다. 주소지를 따라 가본 장소는 겉보기에 너무나 평범한 아파트였던 거다. 솔직히 말해 나를 포함해 봉사자들이 머릿속에 그린 수혜 가정은 영화나 드라마 속 달동네의 모습이었다. 그런 예상이 빗나갔으니 이상하게 느껴질 수밖에. 무언가 잘못된 것 아니냐는 말이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하지만 이런 당황스러움은 오래가지 않았다. 집은 외관만 평범했을 뿐 7명의 봉사자가 집 안에 다 들어가기도 버거웠기 때문이었다.

 늦은 시간임에도 부모님은 집에 계시지 않았고, 다리가 아프신 할머니와 아이들만 우리를 반겨줄 뿐이었다. 산타를 보고 아이들은 신이 났고, 할머니는 미안함과 고마움이 교차하는 표정으로 우리를 바라보셨다. 이후 우리가 방문한 다섯 가정은 모두 비슷했다. 다른 조원들이 방문한 가정 역시 마찬가지였다고 한다. 생각보다 겉보기에 평범한 집이었다.

 소외된 이웃들은 그렇게 멀리 있는 게 아니었다. 영화나 드라마 속 달동네도 아니고, 곧 주저앉을 듯 무너지려는 판자촌도 아니며, 우리가 무심코 지나치던 서울 곳곳에 살고 있었다. 심지어 부자동네라고 알려져 있는 서울 강남 일대에도 말이다. 이처럼 이웃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은 생각보다 가까이에, 많이 있다는 걸 이번 일로 알게 됐다.

 이웃을 돌아보게 되는 세밑인데도 안타까운 소식이 이어진다. 올해 연말 기부의 손길이 예년 같지 않다는 소식 말이다. 올해 사랑의 온도탑이 목표액 50%를 달성하는 데 34일이 걸렸다고 한다. 50%가 되는데 한 달이 넘은 것은 5년 만에 처음이라고 한다. 어려운 사람을 찾아가는 사랑의 연탄도 예년보다 많이 줄었다고 한다. 지난해 이맘때쯤 250만 장이 확보됐던 연탄은 올해 180만 장 수준에 그치고 있다. 경기 불황의 여파일지는 몰라도 이런 소식을 접할 때마다 마음 한구석이 편치 않다. 아마 이런 감정을 느낀 것은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추운 겨울,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우리 이웃들을 한 번씩 돌아보자. 기부란 꼭 큰돈을 내어 놓았을 때 의미를 가지는 것은 아니다. 많은 사람이 조금씩 힘을 모았을 때 더 큰 의미를 가진다. 현금 기부의 형태가 아니라도 좋다. 봉사활동이나 재능기부의 형식으로도 소외된 이웃들을 도울 수 있다. 어떤 형태로든 많은 사람이 우리 이웃들을 생각할 때 따뜻한 겨울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