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계종 적극 중재 … 코레일 노사, 13일 만에 대화 재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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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연혜 코레일 사장(오른쪽)과 박태만 철도노조 수석부위원장(왼쪽)이 26일 조계사 한국불교역사문화관에서 조계종 화쟁위원회 도법 스님의 중재로 만나 악수한 뒤 손을 놓고 있다. 면담 후 노사 양측은 지난 13일 협상 결렬 이후 13일 만에 실무교섭을 재개했다. [김상선 기자]

서울 견지동 조계사는 서울 삼성동의 봉은사와 함께 대표적인 도심 사찰이자 조계종의 선(禪)수행 전통을 상징하는 공간이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촛불시위나 대규모 파업 등 시국 관련자들의 단골 집회 장소나 피신 장소처럼 돼버렸다. 24일 오후 조계사로 피신한 철도노조 박태만 수석부위원장은 “갈 수 있는 곳이 조계사밖에 없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26일 조계종의 ‘철도노조원에 대한 종단 입장’ 발표는 조계사가 단골 시국 피난처로 활용되는 관행의 고리를 끊겠다는 것이다. “조계사는 불교의 대표적인 사찰이며 24시간 기도 수행하는 신성한 공간”이라고 강조했다. 피난처로 오해하지 말라는 얘기다.

 조계종은 그러면서도 철도파업 사태를 대화를 통해 풀어나가는 노력을 하겠다고 했다. 2010년 봉은사의 직영 사찰 전환 문제 등 종단 안팎의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발족한 화쟁위원회를 통해 “우리 사회 발전에 기여하는 방향으로 문제를 풀어가겠다”고 했다.

 이념이나 정략적 목적에 따라 신성한 수행 도량이 어지러워지는 것은 좌시할 수 없지만 어떤 경우든 힘이 약한 사람들의 목소리를 외면하지는 않겠다는 얘기다. 일종의 ‘투 트랙’ 대응이다. 조계종 기획실장 일감 스님은 “쫓겨 들어온 새들은 일단 보호하는 게 맞다. 어쨌든 힘들고 어려운 약자를 보호하는 게 종교적 책무”라면서도 “노사 합의가 잘 돼서 원만하게 일이 해결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이런 입장에 따라 조계종은 26일 발 빠르게 움직였다. 오전 11시 입장문을 발표한 데 이어 오후 1시 화쟁위원회를 열었다. 전날 밤늦게 위원장인 도법 스님이 이날 회의를 소집했다고 한다. 불광사 회주 지홍 스님, 김천 직지사 주지 흥선 스님, 법무법인 바른 김동건 대표변호사 등 화쟁위원회 위원 7명으로 ‘철도 문제 해결을 위한 특별위원회’를 구성했다. 오후 2시 기자회견을 열어 특별위원회를 통해 화해와 중재에 적극 나서겠다고 밝혔다. 당장 도법 스님은 회견 직후 여의도로 가 갈릴리교회 인명진 목사와 함께 새누리당 황우여 대표를 면담했다. 정치권은 물론 코레일 노사 당사자 등 관련자들을 대화 테이블로 끌어내겠다는 의지다.

 불교계에는 1970∼80년대 타 종교에 비해 불교의 사회적 목소리가 상대적으로 약했다는 시각이 있다. 그에 따라 자승 총무원장은 2010년 각종 사회적 갈등이 불거졌을 때 불교가 중재하고 소통하는 역할을 적극 수행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래서 발족된 게 화쟁위원회다. 신라의 원효 대사가 주창한 화쟁(和諍)은 갈등·대립하는 입장을 화해케 하는 지혜다. 이념과 진영을 떠나 엄정한 사실에 입각해 문제를 균형감 있고 합리적으로 다루자는 철학이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도법 스님은 “노사 어느 한쪽의 입장이 아니라 국가 발전, 노동자의 바람직한 삶을 위한다는 관점에서 문제를 풀어 나가겠다”고 했다.

 코레일 최연혜 사장과 박태만 노조 수석부위원장은 이날 오후 2시부터 40분간 회담 후 조계사 불교문화역사문화기념관 입구에서 간단한 브리핑을 했다. 최 사장은 "철도파업이 길어져 국민 여러분께 죄송하다. 오후 4시부터 코레일 서울 사옥에서 노사 실무교섭을 시작한다”고 밝혔다. 실무교섭 재개는 13일 만이다. 박 수석부위원장은 “파업 상황이 종료될 수 있도록 국토해양부와 국회의 적극적 지원을 당부한다”고 말했다. 백성곤 철도노조 홍보팀장은 “철도노조 정책실장 중심으로 2명이 실무협상에 참석한다”며 “민영화 문제 등 핵심 문제에 관해 얘기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글=신준봉·장혁진 기자
사진=김상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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