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리·그레이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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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빌리·그레이엄」이 한국에서 오늘부터 6월7일까지 전국을 누비며 전도 대회를 갖는다.
물론 기독교를 한국인을 상대로 해서 전도하는 것이다. 또 통역을 통한 것임에 틀림없다. 그것이 얼마나 효과가 있겠는지 자못 궁금하다.
기독교와 역사를 통해 가장 뛰어난 전도사는 사도「바오로」였다.
고대 로마 시대에 기독교가 세계적인 종교로 퍼져 나간 데는「바오로」의 힘이 가장 컸다.
그에게는 헌신성과 불굴의 의지, 그리고 웅변의 재능이 있었다. 이런 세 가지를 겸비했던 기독교인으로서는 근대 이후에는「칼빈」정도이다. 그리고 미국의「빌리·그레이엄」이 있다고 볼 수 도 있다.
어떻게 보면「그레이엄」과 같은 인물의 등장은 우연한 일이 아니다. 종교란 사회의 기틀이 흔들리고, 사람들이 정신적인 지침을 잃고 있을 때 나타난다.
위대한 전도사도 마찬가지다. 그를 기다리는 풍토가 마련되어 있지 않다면 소용이 없다.
50연대의 미국 사회는「빌리·그레이엄」과 같은 전도사의 출현을 기다리고 있던 것이나 다름없었다. 더욱이「그레이엄」의 가장 큰 매력은 그의 대중적인 호소력에 있다. 이성만으로는 사람을 설득할 수는 있어도 감동을 주기는 어렵다.
「그레이엄」은 이성보다는 감정에 더 호소하는 묘한 매력을 가지고 있다. 그가 늘『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남성「베스트·텐」에 들어가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더욱이 미국의 대중처럼 종교적인 사람들도 드물다.「퓨리터니즘」이 아직도 강하게 남아 있어서도 아닐 것이다. 합리주의의 극한에서 오히려 초절적인 힘의 불 합리의 세계를 찾게 되는 탓이라고 할까.
특히「로스앤젤레스」에는 유사 종교가 2. 3백이나 된다. 동양의 철학과 종교에 대한 호기심이 가장 강한 곳도 미국이다.
어쩌면「그레이엄」의 전도 대회가 우리 나라에서도 엉뚱하게 대 성공을 거들지도 모른다. 기독교의 전도가 역사적으로 동양에서 가장 성공한 곳이 한국이기 때문이다.
동양에서는 기독교의 승인은 한국보다 중국과 일본·인도가 훨씬 앞서 있었다.
그러나 중국 사람들은「크리스토퍼·도슨」이 지적한 적이 있듯이「맨치스터」제 방직기는 서슴지 앉고 도입했어도 기독교에는 별로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한국보다도 더 오래, 그리고 또 더 끈질기게 서양의 전도사들이 휩쓴 곳이 일본이었다.
그러나 인구에 비겨 볼 때 일본의 기독교 신자 수는 한국에 비해 훨씬 적다. 또한 기독교로 귀의한 일본의 지식인들은 모두 심각한 강압적 갈등과 고민을 겪었다.
우리 나라의 기독교 사에는 그런 감동적인 기록이 없다. 기묘한 얘기가 아닐 수 없다. 이런 기묘한 일이 또 일어날 것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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