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성 방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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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여성을 예찬하는 말들은 너무도 많다. 『무릇 위대한 일의 기원에는 언제나 한 여자가 있다』고 갈파한 사람도 있었다. 「프랑스」의 시인 「알퐁스·드·마르틴」도 여자보다도 더 아름답고, 착한 것이 오직 하나 있다. 그것은 어머니이다. 어머니에 대한 감동은 사람이면 누구나 마찬가지로 따뜻하고 깊다. 이것은 여성만 누릴 수 있는 기쁨이며 보람이다. 여성에게 어머니의 자격이 부여되지 않았던들 여성은 그처럼 예찬의 대상이 되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여성에게 찬물을 끼얹는 말들도 너무나 많다. 공자까지도 여자와 소인은 다루기 힘든다고 일갈한 일이 있다. 「셰익스피어」는 『약한 자여!』하고 여자에게 연민의 탄식을 했다. 『행실이 올바른 여자를 찾는 것보다는 뿔이 난 고양이를 찾는 편이 훨씬 쉽다』는 말도 있다. 정숙한 여성은 화를 낼지 모르지만, 이것은 「러시아」의 문호 「체홉」이 쓴 이야기이다.
그러나 현대 「프랑스」의 여류 작가 「시몬·드·보봐르」는 『사람은 여자로 태어나지 않는다. 여자가 되는 것이다』고 했다. 그의 유명한 저서 『제2의 성』에서 설파한 명언이다. 역시 「프랑스」의 작가 「귀스타브·플로베르」는 여성을 두고 『문화의 소산이며, 인위의 작품』이라고 평가했다.
이런 생각들은 여성의 작위적인 의지를 중요시한 말들이다. 따라서 「플로베르」는 『지적인 문화가 없는 나라엔 여성도 없다』고 단언 할 정도이다.
따라서 「키에르케고르」 같은 현대의 철학자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여자는 여성 본래의 자태로서 사람 앞에 섰을 때 사람을 위한 일체의 것이 될 수 있지만, 소위 「해방 여성」으로 존재할 때는 장난감에 지나지 않는다』고-. 여성 본래의 자태란 견해가 구구하겠지만, 글쎄 어떻게 얘기해야 좋을까? 우선 침묵과 겸손과 가사에 조용히 머물러 있는 것, 말고는 또 무엇이 있을까.
그리고 또 한가지가 있다면, 그것은 여성의 미모가 아니라 훌륭한 행실일 것이다. 훌륭한 행실이란 정확한 실명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최소한 부끄럽지 않는 행실이면 족하다. 「톨스토이」와 같은 할아버지는 『여자가 부끄러워함은 그 당장 뿐이며 아무리 길어도 자기 집 문밖을 넘어서지 않는다』고 핀잔을 준 일도 있지만.
자, 행락의 계절에 유원지에서, 그것도 청천 백일하에 술을 마시고 당인이 보는 앞에 고성방가·난무를 하는 여자를 두고는 무어라고 해야 할지-. 부끄러움이 산과 물로 새어 나갔거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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