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독 맞춤법 개정 공동추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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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베를린=엄순현 통신원】독일·한국과 같은 분단국의 경우 장기간의 단절상태는 여러 가지 면에서 동족간에 이질감을 갖게 해놨다. 사회 제도상의 차이뿐 아니라 문화「패턴」· 생활습성, 더 나아가서는 언어의 개념에서 마저 간격이 벌어지고 있다.
2차 대전 후 분단 독일에서는 자유롭다고는 할 수 없으나 「베를린」장벽이 들어서기까지는 경제·문화·인적 교류가 계속되어 왔다. 이는 동·서독의 독일민족이 그런대로 가냘프나마 동일민족이라는 연대성을 유지하는데 큰 역할을 해냈다.
양 독의 교류는 비단 경제·문화행사의 범위뿐 아니라 학술 면에서도 계속돼 왔다. 그 단적인 예가 독일어 통일문제. 독일어 문제는 양 독뿐 아니라 「스위스」「오스트리아」에서도 사용하는 언어이므로 문어상의 문제가 생기면 각기 의견이 분분하다.
그러나 묘하게도 4개국 학자들의 의견이 엇갈릴 때 비록 정치·사회·경제분야에서의 어휘개념에 차이는 있으나 동·서독이 의견을 같이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러한 양 독 어학자들의 공동작업은 최근의 독일어 맞춤법개혁 움직임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동독 측에서 현재 독일어의 명사의 첫 글자를 대문자로 표기하는데 대해 이를 소문자로 고쳐 쓰자고 제안하고 있다. 동독 측의 주장으로는, 명사에서의 대문자 사용이 「부르좌」계급이 노동자를 억압하기 위한 수단의 하나라고 들고 나온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어린이들이 글을 배울 때 대문자 사용이 과중한 부담이 되고 비논리적이라는 논리학자들의 주장도 있는 판이라 서독 측에서도 이 개혁안 토론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뜻을 비쳐 회의를 열자고 제안했다.
이에 따라 서독 내무성 산하의 독일어 맞춤법 위원회와 동독의 독일어 연구소가 「적합한 소문자」사용에 관한 회의를 소집할 것이라는 소식이다.
그러나 아직도 오랫동안 명사에 대문자를 사용해온 독일인들의 관습은 마치 영국에서 십진법으로 수치개혁을 단행했을 때 많은 사람이 아쉬워했던 것처럼 향수를 느끼게 하고 있어 개혁이 그리 쉽사리 이루어지지는 못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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