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현대 사회주의와 공산주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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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슈=노조도 틀렸다. 공산주의도 틀렸다. 사회민주주의도 틀렸다고만 하니 도대체 당신이 공감하는 것은 무엇인가.
사=당신네들이 빠뜨린 게 하나 있다. 모택동 주의자에 대해서는 아직 묻지 않았던 것이다.
「프랑스」에 모택동 주의자가 나타난 것은 67년이었다. 68년 5월혁명 때까지만 해도 이들은 큰 영향력을 갖지 못했으나 혁명이 실패한 후 이들은 곧장 공장으로 달려가서 노동자들과 공동 투쟁에 나섰다.
이들은 얼마 안 가서 중공과 직결된 파와 이른바 「프롤레타리아」좌익이라는 조직의 두 파로 분열되었는데 내가 가깝게 지내는 친구들은 후자에 속한다. 불법화된 이래 사실상 지하 활동만 하고 있으나 이것은 분명히 새로운 혁명의 조류라고 나는 확신한다.
슈=그러니까 무정부주의자는 아닌 셈이구먼.
사=물론이다. 무정부주의자들이 도대체 혁명에 기여한 것이 무엇이 있는가.
나의 사상을 구태여 설명한다면 현재 「프랑스」에서 「리버럴리즘」(자유주의)이라고 부르는 것과 흡사하다고 말할 수 있겠다. 다시 말해서 인간이란 자기 삶의 주인이며 또 자신의 삶에 대한 조건을 스스로 결정하는 주체라는 뜻이다.
어떤 경우에도 강제라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그리고 이것은 「부르좌」적, 자본주의적 사회질서가 분쇄될 때에나 가능한 것이라.
그렇다고 내가 「마르크스」주의자인 것은 아니다. 나는 단지 『「마르크스」인』일 따름이다(주=「사르트르」는 「프랑스」어로 Marxien이라는 조어를 만들어 사용했다).
슈=「마르크스」주의자(Marxist)와 「마르크스」인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사=간단히 설명하기는 어려운데…. 내가 쓴 『변증법적 이성 비판』이라는 책을 읽으면 도움이 될 것이다.
나는 「마르크스」가 상황에 대한 인간의 반응을 변증법적으로 분석한 것을 높이 평가한다. 그리고 이에 동의한다.
그러나 이것이 개인이나 집단의 장래에 대한 결정론으로 진화되는 것에는 절대 반대한다. 인간은 근본적으로 자유이기 때문이다.
슈=인간 생활에서 사회적 강제를 모두 제거한다….
사=사회적 강제가 있다는 사실이 인간의 자유를 증명한다. 소외가 있다는 것도 인간이 자유이기 때문에 비로소 가능한 것이다.
슈=사실은 「마르크스」도 똑같은 말을 하지 않았는가. 「마르크스」의 초기 논문을 보면 윤리적인 색채가 몹시 강하다. 그는 인간이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고 봤고 그래서 인간의 해방을 역설했던 것이다.
사=똑바로 지적해 줬다. 「존재와 무」에서 바로 이 문제를 다뤘다가 「레이몽·아롱」과 논쟁이 벌어진 적도 있지만….
한가지 주의해야 할 점은 우리가 흔히 『나는 자유롭다』고 생각하는 수가 많은데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점이다. 계급의 모순과 갖가지의 사회적 제약이 우리를 소외시키고 있는 이상 우리는 결코 해방되었다고 말할 수 없고 따라서 자유롭다고도 말할 수 없다.
간단한 예로 아이를 두 명 갖고 있는 부모가 세번째 아기를 배었다고 생각해 보자. 아버지가 만약 날품팔이로 생활비를 버는 집안이라면 당연히 유산을 검토할 것이다. 낳아 봤자 제대로 키울 자신이 없으니까….
자, 이런 경우에 부모나 뱃속의 아기가 받고 있는 제약은 도대체 어디서부터 오는 것인가.
그 책임을 배운 게 없어서 날품팔이 노릇을 하고 있는 아버지에게 물을 것인가.
물론 그렇게 말할 수도 있다. 어쩌면 대부분의 사람이 그런 식으로 대답하고 또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아주 어렸을 적부터 그와 같은 사고방식을 갖도록 훈련받아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그 책임이 사회 체제가 아닌 개인에게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슈=사회 체제를 정의롭게 고치려고 노력하는 세력 가운데 정당이라는 것이 널리 이용되고 있는데….
사=처음엔 그럴 목적으로 결성되었겠지.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들은 관료화되어서 마침내는 체제의 옹호를 위한 전위 기관으로 전락했어.
슈=그렇다면 「레닌」의 이론은 어떤가. 그는 대중을 지도해 나갈 정예의 지도 정당 즉 공산당이 있어야 한다고 역설했는데….
사=반대야. 역사적으로 판단한다면 당시에는 어느 정도의 타당성이 있겠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직업 혁명가라거나 「엘리트」라는 사고방식은 이미 필요가 없어졌단 뜻이다.
오늘날 필요한 것은 「그룹」의 형성일 따름이다. 이들 「그룹]들이 국민과 직접 대화하는 게 가장 중요한 일이다.
슈=직접적인 폭력이나 「테러」가 인간의 해방을 위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가.
사=개인적인 폭력은 반대한다. 개인적인 폭력은 개인적인 목적밖에 이루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폭력 자체를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인간의 해방이 폭력에 의해서만 가능하다고 확신한다.
슈=그렇다면 「뮌헨·올림픽」에서 「아랍·게릴라」들이 벌였던 행동도….
사=그 문제라면 먼저 밝혀 둬야 할 일이 있다. 나는 「이스라엘」을 지상에서 쓸어버려야 한다는 의견에는 반대한다는 점이다.
슈=당신이 좋아하는 혁명적 「그룹」들의 의견과는 상당히 다르구먼...
사=그렇다. 그리고 난 이런 사실을 한번도 숨기려 한 적이 없다.
현재의 여건으로 볼 때 「아랍·게릴라」들은 「테러」를 감행할 충분한 이유가 있고 또 「이스라엘」은 「이스라엘」대로 이에 대항할 충분한 이유가 있다는 게 나의 소견이다.
사=「아랍·게릴라」가 「올림픽」을 쑥밭으로 만든 것도 정당하고 「이스라엘」이 강경하게 살인을 도운 것도 정당하다는 뜻인가.
사=인질을 곱게 비행기에 태워 보냈더라면 그런 참변이 안 일어났을 것이다. 서독과 「이스라엘」의 잘못이었지. 정치적으로 볼 때 「아랍·게릴라」들이 「테러」행위를 취한 것은 절대적으로 옳았다.
슈=당신도 가끔 그 비슷한 행동을 한 적이 있다. 예컨대 당신이 편집장으로 있는 「라·코즈·뒤·푀플」을 가두에서 판매한 것도 이에 속할 것이다.
그러나 당신은 대학자였기 때문에 항상 특별 취급을 받았다. 「드골」도 『「볼테르」영감은 체포하지 말라』고 명령했을 정도니까.
따라서 당신은 그런 특별 취급을 받지 못하는 「스타」가 아닌 일반「데모」의 고충에 대해서는 잘 모르리라고 생각한다.
사=「스타」역이라…. 그 점에 대해서는 우리도 여러 차례 토론을 했었다. 하지만 나는 나의 지위를 활용했을 따름이고 그것은 나의 친구들에게 큰 도움이 되었으므로 모두 만족했다.
슈=말하자면 그것은 지식인으로서의 기능이었다는 뜻이다.
사=지식인에 대한 정의부터 새로 내리는 것이 좋겠다. 특정 계급이 모든 권력을 쥐고 있는 사회에서는 지식인이란 자기의 기능 때문에 번민하는 사람들을 가리킨다. 예를 들어 「아인슈타인」은 순수이 학구적인 동기로 원자폭탄의 원리를 밝혀냈지만 결과적으로 인류에게 궤멸에의 길을 열어 준 셈이 되지 않았는가. 오늘날의 지식인들은 크고 작고간에 모두 이와 같은 고뇌를 짊어지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오늘날에는 지식인의 역할도 크게 변했다. 그들은 과거처럼 대중을 이끄는 이념을 창조해 내는 지배계급이 아닌 것이다.
이제 이와 같은 작업은 대중의 손에 넘어갔고 지식인은 대중의 구성원으로 변했다.
나는 2월5일부터 3월 초순 사이에 일간지를 하나 낼 예정이다.
이것은 혁명의 이념을 대중에게 널리 전파하는 신문이며 지금까지 나온 신문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이 신문을 중심으로 우리는 새로운 정치 조직을 만들 예정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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