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냘픈 휴전』의 현장|월남 「니빈」촌의 경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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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월남 제4공로 바로 근처에 있는 「니빈」 촌락은 휴전에서 상호 불신과 공포가 선의를 물리치게 될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하는 하나의 단면도를 보여주고 있다. 「니빈」촌은 휴전발효 3일만에 다시 총을 손에 들고 서로 살육을 벌여야 하는 휴전의 고민상을 여실히 보여준 하나의 실례였다.
이 마을은 「사이공」 서남방의 곡창 지대인 「메콩」 삼각 지대에 있는 어느 다른 마을과 다를 바 없는 평범한 마을이다.
지난 27년간 이 지방은 전통적으로 「베트콩」의 지배하에 있었는데 지난 1월27일 휴전이 발효하기 바로 16시간을 앞두고 「베트콩」은 「베트콩」기를 게양하고 이곳 수십개의 마을들이 「베트콩」 지배하에 있다고 정식으로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휴전 협정에 따라 다음날 아침 월남 정부군이 나무 꼭대기에 꽂혀 있는 「베트콩」기의 1백「야드」 지점으로까지 접근해 왔을 때 쌍방의 어느 쪽도 서로 사학을 하지 않을 뿐더러 「베트콩」기를 끌어내려야 하느니 안 해야 하느니의 아무런 말썽도 없었다.
휴전이 발효한 후의 첫 3일 동안 월남의 여타 지역에서는 휴전 발효 전보다 더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는데도 「니빈」촌에서는 평화를 유지하자는 상호 합의가 이루어졌다.
이 합의는 아무도 아무 것도 통과하지 않는 무인 지대를 사이에 두고 쌍방 병사들의 고함소리로 성립된 것이었다. 『너희가 우리 깃발을 떼지 않으면 우리도 너희 것을 건드리지 않을께. 우리 진지에 발포하지 않으면 우리도 너희에게 쏘지 않기로 한다…』하는 식으로 아주 간단하게 합의가 성립되어 한동안 이 합의는 지켜졌다.
언제 깨질지도 모를 이 가냘픈 평화 합의 기간 동안에 「베트콩」 마을의 가족들은 음식이나 어린이들을 데리고 때로는 서로간의 소식을 전해 주기 위해 정부군 진지를 지나 다른 마을의 남편 아버지 형제들을 만나 보러 왕래를 했다.
휴전 발효 후 첫날인 1월28일에는 무장을 푼 쌍방의 군인들이 그 전날까지만 해도 서로 싸우던 상대편 군인들을 서로 방문하고 이야기를 나누며 식사도 같이하고 술도 나누어 마셨다.
휴전 후 2일째에 찍은 한 사진을 보면 한 월남 군인이 촌락 끝의 기지 위에서 서로 어깨에 손을 얹어 끌어안고 「베트콩」의 세 병사들과 합께 서 있는 모습까지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어찌된 영문인지-물론 이러쿵저러쿵하는 이유는 많이 댈 수 있는 것이겠지만 이 가냘픈 평화 기간은 소멸되어 버리고 말았다.
이 사진에서 찍혔던 월남 정부군인 및 몇 명의 「베트콩」 병사는 서로 이해하려는 그들의 노력을 표시하는 이 기록 사진의 촬영을 위해 「포즈」를 취한지 불과 수시간만에 서로의 총탄을 맞고 묘지 근처에서 죽고 말았다.
그후 한 젊은 월남 군인은 『총을 쏘아 대다니 「베트콩」은 「넘버·텐」이야…』라고 말했다.
한편 한 늙은 농부는 장갑차가 높은 키로 자란 녹색의 논 사이를 굽이굽이 돌며 움직이고 있는 방향을 가리키면서 『월남군이 왔어, 월남군 쪽이 쏘고 「베트콩」측도 쐈어, 이제 이 마을의 평화는 끝나고 말았어…』라고 말했다.
정부군의 또 다른 병사는 『오늘 아침에 일어나 보니 「베트콩」측이 더 많은 깃발을 우리측 위치에 더욱 바싹 다가와서 꽂아 놨어요』라고 말한다. 이는 「베트콩」측이 알고 있었건 모르고 있었건 간에 휴전 협정의 위반이다.
월남 정부군 측에 의하면 「니빈」촌에 평화가 깃들인지 72시간 후에 장갑차가 이른 새벽에 안개 속에서 나타나 화염방사기와 기관총을 싣고 와 「베트콩」기와 초옥들을 불살라 버렸다는 것이다.
한 서독 기자는 월남 군인이 높은 나무 위에 꽂힌 「베트콩」기를 끌어내리려 할 때 그와 함께 있었는데 깃발이 떼어지는가 싶을 때 무언가 부러지는 소리가 나더니 폭발이 일어나 이 병사는 죽고 서독기자는 파편으로 팔과 다리가 날아가 버리고 말았다.
「사이공」에서 온 자동차 운전사인 「탐」이라는 사나이는 자기 장인 집 가족이 평화의 십자 포화 속에 말려들어 2명이 죽고 어린이들이 중상을 입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베트콩」이 장모 집에 들어오더니 아무도 이곳을 떠나서는 안 된다고 말하더라는 거예요. 그들은 장모 집에 「베트콩」기를 달았는데 월남 공군 「제트」기가 바람에 나부끼는 이「베트콩」기를 보더니 공중에서 반전하여 급강하를 하더래요.
장모 집 식구들이 비행기 소리를 듣고 문밖으로 뛰어나가는데 그대로 폭탄이 지붕을 뚫고 떨어졌다는군요.』 그는 그리고는 『「갓뎀」 「베트콩」 「갓뎀」 월남군…』이라고 중얼거렸다. 【UPI=동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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