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글루텐 성분 뺀 국수·빵 … 누구에게나 건강식은 아니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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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가루에 있는 글루텐은 쫄깃쫄깃한 식감을 주지만 일부 사람에게는 소화흡수가 잘 안되는 문제가 있다. 그러나 대다수에게는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김수정 기자

건강한 식탁에 관심이 높아지면서 글루텐프리(gluten-free) 식품이 주목받고 있다. 글루텐은 밀에 있는 단백질이다. 밀가루 반죽을 부풀어 오르게 하고, 쫄깃쫄깃하게 만드는 성분이다. 그런데 글루텐에 과민하게 반응하거나 밀가루 음식에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는 사람이 있다. 글루텐프리 식품이 나오게 된 배경이다. 쿠키·케이크·시리얼·시럽·국수 등의 제품을 밀 대신 쌀·옥수수·감자 같은 다른 곡류로 대체한다. 이런 글루텐프리 식품이 최근에는 일반인에게도 일종의 ‘건강식품’으로 각광받는 분위기다. 지나친 밀가루 음식 섭취가 건강에 악영향을 미치고, 비만을 유발한다는 이유다. 그러나 글루텐프리 식품은 밀가루와 글루텐이 체질에 맞지 않는 사람의 대체식품일 뿐, 모두에게 적용할 수 있는 건강식품은 아니라는 지적도 있다. 글루텐프리의 허와 실을 짚어본다.

밀가루 알레르기·과민 환자 위한 대체식

외국에서는 각종 시리얼과 제빵 믹스, 파스타 면과 소스, 핫초콜릿 가루 등 다양한 식품에서 글루텐프리 제품이 나온다. 미국식품의약국(FDA)은 올해 8월, 식료품에 ‘글루텐프리’ 기준을 정하고 표기를 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국내에서도 면류에 글루텐프리 식품이 출시됐는데 다양한 제품군이 없어 해외에서 구매 대행을 하는 소비자들도 있다.

글루텐프리는 본래 셀리악병(글루텐 소화 불능) 환자를 위한 식품이다. 인구의 약 1%가 앓는 질환으로 밀·귀리·보리의 글루텐을 흡수하지 못하는 병이다. 밀가루 음식을 먹으면 설사를 하고, 배가 부풀거나 통증을 호소하며 만성소화장애가 온다. 증상이 오래가면 빈혈, 체중 감소, 시력 저하, 탈모, 비만에 영향을 준다. 그렇지만 국내에는 환자가 극히 드물다. 분당서울대병원 소아청소년과 양혜란 교수는 “최근에 성인에서 한 건 정도가 보고된 것 외에는 사례가 없다”며 “국내뿐 아니라 아시아권은 유전이 원인인 셀리악병이 드물다”고 말했다.

셀리악병은 별로 없지만 밀가루 알레르기와 글루텐 과민증에 대한 사례는 늘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셀리악병을 앓지 않더라도 밀가루 음식에 예민한 증상을 겪는 사람은 글루텐프리 식품을 적극적으로 찾는 소비층이다. 미국에서는 밀을 섭취했을 때 불편함을 호소하는 사람이 약 6%로 추정된다. 양 교수는 “밀은 우유·계란·갑각류 등과 함께 대표적인 식품 알레르기를 일으키는 것 중 하나”라며 “국내에서도 환자가 증가세”라고 말했다. 알레르겐(알레르기를 일으키는 물질)은 보통 식품 속에 들어있는 단백질이다. 따라서 밀가루 음식을 먹으면 두드러기·발진 등이 나는 사람은 글루텐프리 식품을 먹으면 도움이 된다.

밀가루 음식이 소화가 잘 안 되고 속이 더부룩하다고 호소하는 사람에게도 권한다. 서울성모병원 가정의학과 김경수 교수는 “글루텐을 소화시키지 못하는 사람은 그 반응으로 소화불량과 설사 증세가 천천히 나타난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과민성 대장증후군 환자 중 약 12%가 글루텐에 과민하다는 보고도 나온다.

한국인이 과다 섭취하면 복부비만 원인

글루텐프리 제품은 글루텐·밀에 예민한 사람에게 의미가 있다. 그러나 일반인에게도 일종의 건강식으로 오해받는다. 실제 글루텐프리 시장은 세계적으로 연평균 30%씩 성장세다. 식품회사들은 앞다퉈 글루텐프리 식품을 내놓는다. 글루텐프리에 열광하는 이유는 밀가루가 건강을 악화시키고 비만의 주요 원인이라고 잘못 생각해서다. 일부 엄마는 아이에게 밀가루가 전혀 들어가지 않는 이유식을 주기도 한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밀가루 자체가 문제는 아니라고 말한다. 김경수 교수는 “쌀과 감자는 주로 밥으로 먹거나 쪄서 먹는다”며 “반면 밀가루는 그 자체로 먹는 게 아니라 설탕과 버터를 듬뿍 넣은 케이크·도넛·쿠키 등으로 가공해서 먹는 식품이 대부분이라는 점에서 문제가 된다”고 말했다.

숙명여대 식품영양학과 김현숙 교수도 “밀가루는 뛰어난 가공성으로 다른 식품에 함유돼 있는 영양소를 운송하는 역할을 한다”며 “건강을 위한 바람직한 식습관은 밀가루 가공식품 섭취 시 설탕·소금 같은 다양한 첨가제에 주의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나라는 밀이 주식인 서양과 달리 쌀이 주식이므로 탄수화물 과잉이 우려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경수 교수는 “글루텐프리 식품이 모두에게 좋은 기능성 식품인 것으로 착각할 수 있지만 밀이 들어가지 않았을 뿐 쌀·감자·옥수수와 같은 곡물”이라며 “쌀이 주식인 한국사람은 자칫 탄수화물 과잉섭취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탄수화물 섭취가 많아지면 쓰고 남은 탄수화물이 중성지방으로 쉽게 전환돼 비만의 원인이 된다. 특히 성인병 발병 위험을 2배 높이는 복부 비만의 주요인이다.

아이에게 밀가루가 해롭다며 글루텐프리 식품만을 고집하는 것은 오히려 밀가루 알레르기를 생기게 하는 잘못된 육아법이란 지적도 나온다. 양 교수는 “이유식을 시작할 때 아토피가 생기고 건강에 해를 끼친다는 이유로 밀가루 음식을 모두 빼버리는 것을 많이 본다”며 “떠돌아다니는 정보에 의존한 잘못된 방법”이라고 지적했다. 어릴 때는 다양한 음식을 먹어 식품에 적응해야 한다. 그는 “부모의 과한 걱정으로 식단이 불균형해지면 아이가 건강하게 자라는 데 외려 악영향을 미친다”고 말했다.

미국 소비자 잡지인 컨슈머리포트도 글루텐프리 돌풍의 이면을 지적했다. 컨슈머리포트는 “글루텐프리 식품은 1%의 글루텐 소화불능 환자를 위한 필수품”이라며 “의사와 상담하기 전 글루텐을 피하는 건 현명하지 못하다”고 지적했다.

이민영 기자

◆글루텐프리=밀·귀리·보리에 있는 단백질인 글루텐을 피하기 위해 쌀·감자 등을 주요 재료로 만든 식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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