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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내 생각은

채명신 장군이 남긴 숙제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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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나를 파월장병 사병묘역에 묻어달라.”

 지난달 영면한 채명신 초대 주월남 한국군사령관이 유족들에게 남긴 유언이다. 예비역 중장인데도 자신을 장군 묘역이 아닌 월남전 참전 전사자 사병묘역에 같이 묻어달라고 한 것 자체가 파격이다. ‘참군인의 사표’ ‘진정한 군인’이란 국민의 칭송이 넘친다.

 이렇듯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오는 것은 남들이 못한 일을 그가 처음으로 실천에 옮겼다는 사실 때문이다. 이로 인해 우리 사회, 특히 군 장교단의 의식과 관행에 많은 변화가 기대된다. 군 문화에도 상하동욕(上下同慾)하는 좋은 기풍이 확산될 것이다. 이번 결정은 만시지탄이다. 창군의 역사를 놓고 볼 때 늦은 감이 있지만 그가 있었기에 가능했고 환영할 일이다.

 장군이 우리에게 준 가르침은 차제에 묘지 크기가 다르게 구획된 신분별 묘역이란 차별을 없애야 한다는 점이다. 국립묘지의 큰 부분을 점하고 있는 군인묘역은 장군·장교·사병 묘역으로 각각 나뉘어 있다. 사후에도 생전 계급에 따라 예우하는 ‘이상한’ 구획 조성이다. 나라사랑에도 귀천이 있다는 것인가.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그 유례를 찾기 힘든 우리만의 특이한 경우다.

 진정한 명예는 국민의 공감 속에서 빛을 발한다. 전사한 ‘아들’ 옆자리에 전투에 같이 참전했던 장군의 묘가 함께 자리한다면 그 가족들에게 주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그들은 함께 싸운 전우 사이라는 점이다. 이제는 국립묘지가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이 잠든 과거의 묘지가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곳을 국민의 마음을 한데 묶는 성지로 만드는 일은 우리 모두의 책무다. 그렇기에 신분별 묘역은 역사 속으로 사라져야 한다. 이런 정신이 후세까지 온전히 전해져야 나라의 미래가 밝을 것이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결코 멀리 있는 거창한 것이 아니다. 바로 옳은 일과 나라를 먼저 생각하고 이를 몸소 실천하는 것이다.

고성윤 한국국방연구원 국방현안연구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