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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중계 딱 4시간 쓰려고 93억 들여 수상도로 건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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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지방자치단체장이 국제스포츠행사 유치 아이디어를 낸다. 거의 모두 찬성 일색이다. 합심해 총력을 기울여서는 개최권을 따낸다. 그러나 막상 대회 후 정산을 해 보면 거액의 적자가 남는다’. 예외가 없었다. 국내 지자체들이 유치한 국제스포츠행사는 모두 이랬다. 대부분은 또 정부의 유치 승인과 국비 지원을 얻어 냈다. 유치지역 국회의원들이 나서 뛴 결과다. “말렸어야 할 적자 스포츠행사 유치를 정부와 정치권이 부추겼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스포츠대회를 위해 수백억원을 들여 지어 놓은 시설물이 활용되지 못하고 방치되기도 한다. 그야말로 1회성이었던 셈이다. 심지어 행사 후 시설물을 유지·보수하느라 계속 돈이 들어 적자가 더욱 쌓여 가는 경우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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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충주시 탄금호에는 폭 7m, 길이 1.4㎞의 수상도로가 있다. 지난 8월 25일부터 9월 1일까지 이곳에서 열렸던 세계조정선수권대회를 위해 만든 구조물이다. 방송차량이 배를 따라가며 중계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수상도로를 만드는 데 93억원을 쏟아부었다. 하지만 이 시설을 이용한 것은 대회기간 중 딱 두 번, 총 3시간50분에 걸쳐서뿐이었다. 대회가 끝난 뒤 충주시는 수상도로를 산책로로 개방했으나 이용객은 하루 수십 명에 불과한 실정이다. 지난달 22일 탄금호에서 만난 충주시민 김주형(44)씨는 “호수의 운치를 느낄 수 없는 콘크리트 도로에서 산책할 사람이 몇이나 될지 모르겠다”며 “대회 때 4시간 정도 쓰려고 100억원 가까운 예산을 낭비한 것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조정선수권은 김호복(65) 전 시장이 유치했고, 수상도로 건설은 이종배(56) 현 시장 때 했다.

해외 중계 안 해 ‘도시 알리기’ 무색

 215억원을 들여 2010 상주세계대학생승마선수권대회를 치르려고 지은 경북 상주국제승마장 역시 애물단지가 되다시피 했다. 17만7000㎡에 실내외 승마장을 갖춘 이곳은 현재 시민과 관광객 대상 승마체험장으로 운영되고 있다. 하지만 이용객은 뜸하다. 지난달 21일 오후 취재진이 들렀을 때 체험객은 대학생 4명뿐이었다. 승마장 측이 인근 대학에 개설한 승마교실 수강생이었다. 유료 이용객이 많지 않아 상주시는 시설 유지·관리비에서만 한 해 1억5000만원의 적자를 보고 있다. 그렇잖아도 국제승마대회를 치르면서 246억원의 손실을 봤는데 관련 적자가 갈수록 불어나고 있는 것이다.

 충주조정선수권과 상주승마선수권은 해외 중계가 단 한 차례도 이뤄지지 않아 “애초부터 스포츠대회 유치의 본 목적인 도시 이름 알리기에 아예 뜻이 없었던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결과적으로 골칫거리가 되고 마는 국제스포츠행사 유치는 대부분 지자체장이 의견을 내서 시작됐다. 전문기관이 이모저모 검토해 손익계산서를 뺀 뒤에 유치 결정을 하는 것이 아니다. 유치가 “단체장 업적 쌓기용”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2011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는 2003년 대구 여름유니버시아드대회를 참관한 자크 로게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이 당시 조해녕(70) 대구시장에게 “육상선수권대회를 유치해 보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한 게 발단이었다. 다음은 일사천리였다. 대구시의회도 환영했다. 2005년 6월 유치위원회를 구성한 뒤 2011년 대회를 따냈다. 그러나 이 대회는 전체적으로 2430억원 적자를 기록했다.

 상주승마선수권 역시 이정백(63) 전 상주시장이 아이디어를 냈다. 상주가 조선시대 영남에서 한양으로 갈 때 거치는 관문이어서 역마 보관소가 있었다는 점에 착안했다고 한다. 이 시장은 승마장을 만들어 승마선수권을 유치하자고 시의회에 제안했다. 반대 없이 추진된 대회는 결국 큰 적자를 시에 안겼다. 이 시장은 승마대회가 열린 2010년 퇴임했다.

 박준영(67) 전남지사가 유치해 2010년부터 매년 열린 전남 영암 포뮬러원(F1) 코리아 그랑프리는 단발성인 다른 대회와 달리 수익성 조사를 했다. 국민체육진흥공단 산하 체육과학연구원이 보고서를 만들었다. 연구원은 보고서에서 “F1을 2016년까지 치르면 1112억원 흑자가 난다”고 했다. 그러나 F1은 현재까지 6700억원이 넘는 손실을 냈다. 체육과학원 측은 “애초 2000억원이라던 경기장·인프라 건설비용이 4900억원으로 늘었고, 전혀 지출을 예상하지 않았던 TV 중계권료마저 전남도가 매년 수백억원씩 부담했기 때문”이라고 예상이 빗나간 이유를 설명했다.

F1 개최권료 깎다 내년 대회 못 열어

 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자 견디지 못한 전남도는 F1 대회를 운영하는 포뮬러원매니지먼트(FOM)와 개최권료 인하 협상에 나섰다. 지난해 4370만 달러(약 503억원)였던 것을 올해 2700만 달러로 깎는 데는 성공했다. 이어 내년 개최권료를 2000만 달러로 재차 낮추려다 아예 내년도 개최권을 뺏겼다. 계약상 2016년까지 우선권이 있어 2015년에 다시 도전한다지만 쉽지 않다. FOM 측이 개최권료를 낮춰 줄 이유가 없다. 개최가 불가능해지면 4900억원을 들여 만든 경기장은 자칫 무용지물이 될 판이다. 국내 프로대회와 동호인대회용으로 경기장을 빌려주고 돈을 받을 수 있다지만, 올해 F1 조직위가 이처럼 임대를 해 올린 수익은 29억원으로 총건설비용의 0.6%에 불과하다.

◆특별취재팀=이찬호·전익진·홍권삼·황선윤·신진호·최경호·최모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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