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루먼」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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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해리·S·트루먼」옹이 며칠째 중태에 빠져있다. 88세의 노령으로 그 위기를 이겨낼 수 있을지 궁금하다. 외신은 역시 미수의 노부인이 그의 병상을 지키고 있다고 전한다.
「트루먼」은 미국의 역대대통령 중에서 그 누구보다도 우리와는 인연이 깊다. 한국동란에 「유엔」군을 참전시킨 것은 오로지 그의 역량과 결단에 의한 것이었다. 만년, 그의 『동고록』을 보면, 그것은 남한을 도우려는 단순한 조치만은 아니었다. 「트루먼」은 본질적으로 『한국동란이 세계3차 대전으로 발전할지도 모른다』는 심각한 의구심을 품고 있었다.
그는 현대사 속에 그 이름을 남겨놓을 만한 인물이다. 이른바 『세 가지의 세기적인 결단』을 내린 미국대통령이다.
하나는 일본「히로시마」에 인류사상 최초로 원자폭탄을 던졌다. 또 하나는 「마셜」계획의 창시자이다. 마지막 결단은 한국동란의 참전. 이들은 인류최대의 전쟁에 종지부를 찍고, 또 그 전후사의 방향을 가늠한 상징적인 사건들이라고 할 수 있다.
「트루먼」은 언젠가 미국의 유명한 내막기지 「존·갠더」와의 대담 중에 『그것은 정말 무서운 결단이었다』고 고백한 일이 있었다. 원자탄투하를 결정할 때의 심정을 말한 것이다.
「트루먼」은 또 『원자탄은 아마 세계를 차가운 별(성)로 만들지도 모르지!』하고 술회한 적도 있었다. 그 후 어느 나라의 원성도 다시는 원자탄을 투하한 일 없는 것은 『차가운 별』의 경고를 저마다 마음속 깊이 통감한 때문인지도 모른다.
한국참전에 「유엔」군을 출동시킨 것은 정치가로서의 그 수완을 평가하게 한다. 「존· 갠더」의 『「미주리」주에서 온 사람』(트루먼 전)엔 그의 인품을 설명한 재미있는 비유가 하나 있다. 『주먹으로 힘껏 한차례 그의 얼굴을 때리면 그는 눈을 끔벅하기는 하겠지만, 비틀거리지는 않을 것이다』-.
또 하나의 일화. 일본군의 진주만 공격이 있은 후, 그는 「마셜」장군을 찾아가 입대를 자원했다.
「상원의원께선 연세가 쉰둘이나 됩니다. 전쟁은 젊은이들의 것입니다』-「마셜」의 말.
그런 「트루먼」은 놀랍게도 대학졸업의 학력이 없다. 고교를 마치고 그는 대학대신 10년간의 농부 생활을 했다. 「트루먼」은 정치적인 출세를 처음엔 그렇게 야심 있게 생각지 않았다.
『일백만「달러」를 준다고 해도 대통령은 안하겠다』고 공언한 적도 있다. 그러나 1944년 「루스벨트」정권의 부통령이 되고, 그 다음해 「루스벨트」의 서거와 함께 대통령이 되고 말았다. 결국 48초년엔 대통령에 출마, 당선되었다. 권력의 뜨거움은 그의 인간적인 겸허 따위는 쉽게 녹여 버렸다.
지금 그의 병상을 지키는 부인 「베스·월리스」여사는 5세 때부터 주일학교에서 사랑한, 처음이며 마지막 여성. 「트루먼」옹은 지금 여한도 없이 깊은 절망 속에서도 따뜻한 미소를 짓고 있을 것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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