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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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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환절기가 되어 옷장의 대청소를 할 때이다. 햇볕에 그늘에 제각기 널어 통풍도 시키고 내의 등도 정리하는 등 작년 겨울을 회상하며 서랍을 정리하다 옷 갈피에 싸 넣어두었던 좀약이 딱딱히 만져지기에 펴 보았다. 1년을 지나면 으례 모두 산화해 버렸어야 할 것인데 어찌된 영문인지 처음 샀을 때의 크기인 돌 사탕 만한 그대로여서 냄새를 맡아보고는 놀라고 말았다.
좀약인 「나프탈렌」냄새가 아니고 백색 무취한 흙덩어리가 아닌가. 살 때는 분명 「나프탈렌」이었는데 당의정처럼 겉치장만 해두었던 모양이다. 별 것 아닌 작은 것에까지 가짜가 드러났을 때는 가슴이 철렁해지며 지난 1년간 속아서 놀란 여러 가지 일들이 연상됐다.
시장이 멀고 아기를 키우며 살림을 하다 보면 집안에 찾아오는 떠돌이 행상의 물건에도 눈길을 주게 된다. 또 필요한 물건일 때는 여러 말을 하여 값도 에누리하게되고 사게 되는 일이 있다.
마른 북어 한 궤를 사서 조리를 하려고 물에 넣으면 썩은 것을 말린 것인지, 악취가 나서 강아지의 밥이 되는가 하면 가짜 참기름·가짜 꿀 해서 1년을 지나고 회상하면 적어도 서너 번씩은 속게된다.
번번이 뉘우치게 되어 특히 떠돌이 행상이라면 불신감부터 앞서게 된다. 믿을 수 있는 물건, 에누리에 신경 쓰지 않고, 제값을 주고 살수 있는 정찰제, 이런 좋은 풍토가 지방의 변두리 구석구석까지 번져, 안정된 상거래, 양심적인 상도덕이 이루어지려면 누구보다 먼저 소비자, 특히 주부의 안목이 더욱 예민하고 비판적이 되어야 하겠다고 절실히 느껴진다. <채연주 (경기도 시흥군 안양읍 양지동811 방용덕 씨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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