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세진의 언해본 『노걸대』 발견|국어 음운 연구의 귀중 문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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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언해본 『노걸대』 가운데 가장 오랜 것으로 보이는 최세진의 『노걸대』 1책이 최근 학계에 소개되고 있다.
남광우 교수 (중앙대·국어학)는 9일 이 책을 공개하면서 『이 책은 「언해본 노걸대」 가운데 지금까지 알려진 가장 오랜 책일 뿐 아니라 최세진의 지금까지 전하지 않던 저서의 새로운 발견으로 국어 학계에 커다란 수확이 된다고 설명했다.
중국어를 배우는 책인 『노걸대』는 원래 고려 때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나 지금까지 전하는 『노걸대』는 모두 조선 왕조 시대의 것들이다.
한문본으로는 오늘날 영조 37, 38년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 『노걸대 신역』, 정조 19년 1795년에 만들어진 『중간 노걸대』가 있으며 언해본으로는 1670년인 현종 11년에 만들어졌다고 알려진 『노걸대 언해』와 정조 19년에 만들어진 『중간 노걸대 언해』가 있다. 따라서 지금까지는 「언해본 노걸대」 가운데 1670년께에 만들어진 『노걸대 언해』가 가장 오랜 것으로 알려졌었다.
그런데 이번에 발견된 『노걸대』는 이보다 l백60여년 앞선 16세기초의 간본으로 보여져 국어 학계에 관심을 모으게 된 것이다.
남광우 교수는 이 책을 16세기초에 만들어진 국어 학자 최세진의 저작으로 보는 이유로서 ①최세진의 『노걸대』가 있다는 기록이 있으며 ②최세진이 쓴 『사성통해』에 부재 돼 있는 『번역 노걸대 박통사 범례』로 미루어 최세진의 「언해 노걸대」가 있음을 확증할 수 있고 ③「언해 노걸대」는 최세진 전이나 최세진 당시에 다른 저작가가 없었다는 것을 들였다. 오직 최세진만이 『언해 노걸대』를 만들었다는 근거가 강조되고 있다.
책의 체재 면에서도 이 책은 최세진의 『박통사 언해』와 어미가 같고 매장 9행으로 된 것이 같으며 매행이 19자씩인 것이 같기 때문에 이것이 최세진의 저작임을 알 수 있다는 설명이다.
단지 『박통사 언해』가 을해 주자본인데 비해 이 책은 목판본이란 점이 다를 뿐이다.
그뿐 아니라 국어학적 입장에서 이 책을 다른 최세진의 저작과 비교할 때 어법이나 표기 등이 두루 같기 때문에 그 점은 더욱 확신할 수 있다.
『노걸대 조』는 물론 상권이고 하권으로 『노걸대석』이 있음직 하지만 이 책 하나만으로도 국어학 연구상 적잖은 기여를 할 것 같다.
이 책엔 임진란 이전의 책임을 입증하는 특징들 즉 ①글자 옆에 방점이 붙었고 ②반치음△이 쓰이고 있으며 ③꼭지 있는 ㅇ인 ㆁ이 쓰이고 있다.
그런 때문에 최세진의 다른 저작들인 『번역 박통사』『박통사 언해』와 함께 16세기초 중세어 연구에 훌룡한 자료가 될 것이다.
『노걸대 언해』보다 1백60여년 앞선 『노걸대』로서 그간의 우리말 변천을 비교 연구하는 자료도 될 것이다. 이 책의 크기는 가로 22cm, 세로 33cm로 상당히 큰판형인데 광곽은 가로 18·8cm, 세로가 24·4cm다.
책장수가 71장, 장마다 19자씩 9행인 것은 『노걸대 언해』가 64장, 19자씩 10행인 것과 다르나 두 책이 서문이 없는 것은 마찬가지다.
또 한자로 표기된 회화체의 중국어 문장에 글자마다 우리말로 된 발음법과 글자의 뜻을 쓴 형식은 모두 『노박집람』이나 『번역 박통사』와 같다.
이 책의 저자로 보이는 최세진 (l473∼1542년)은 조선 왕조 11대 중종 시대의 유일한 중국어 학자이며 국어 학자로 중국어 한자 운서인 『사성 통해』 2권과 한문 학습서 『훈몽자회』 등을 저술한 인물이다.
이번에 새로 발견된 『노걸대』로 그의 저술은 모두 전하게 된 것이지만 이를 통해서 그의 이름은 다시 한번 기억되게 되었다.
잡지 수집가 백순재씨 (서울 고교 교사)가 수집, 남광우 교수에 의해 학계에 소개되고 곧 중앙대 대학원에서 영인 간행될 이 책은 앞으로 국어 학계에 중요한 연구 대상이 되겠지만 문화재적인 가치도 무시될 수 없을 것 같다. <공종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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