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도전속 세계의 기업 (4)|다국적 기업

중앙일보

입력

경제 제국을 건설하고 있는 다국적 기업의 활동은 20세기를 특징 짓는 현상의 하나다. 자본의 집중의 하나다. 자본의 집중과 함께 점차 비대해지고 있는 세계의 4천여 다국적 기업이 취급하는 상품·용역은 4천5백억불에 이르러 세계 총 생산량의 15%에 달하고 있는데도 이들에 대한 인식은 아직도 부족하고 어떤 면에서는 과소 평가되고 있다.
근착 외지는 다국적성 분석의 「케이스·스터디」로 세계 1백80여 지역에 진출하고 있는 「싱거·미싱」 회사를 선정, 그의 수많은 생산품·「마키팅」·금융 활동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하고 있다.
1백21년의 전통을 가진 자본금 21억불의 「싱거」 왕국은 현재 미국에 13억불, 구주에 5억불, 남미에 1억3천만불, 동남아에 9천만불, 「캐나다」에 5천만불, 「아프리카」 중동 지역에 3천5백만불에 달하는 자본 진출을 실현하고 있다.
통화 위기의 암운이 세계를 덮고 있던 1971년8월 중순께 「닉슨」의 「달러」화 평가 절하 공표 이틀 전에 이미 각국에 퍼져 있는 정보망으로부터 정보를 입수한 다국적 기업 「싱거」 회사의 재무 담당 이사 「D·G·로빈스」는 미리 2천만불의 「달러」를 「스위스·프랑」·영국 「파운드」화로 현지에서 재빨리 바꿔 놓았다.
「싱거」 회사로서는 이것이 금융 시장의 변덕에서 오는 피해를 줄이기 위한 작은 자위책에 불과했으나 4천여개의 다국적 기업이 모두 하나같이 이처럼 재빠른 자위책을 강구한 결과는 엄청난 것으로 국제 통화 위기를 결정적으로 자극하는 결과를 빚었다.
미국 안의 비판자들은 『악질 투기업자는 다름 아닌 바로 그들』이라고 공박한다. 그러나 다국적 기업의 간부들은 스스로 「신세계주의자」로 자처하면서 그들이야말로 경제 개발과 국제 번영·세계 평화의 역군이라고 기염이 대단하다.
연 거래액이 60년의 2천억 「달러」에서 4천5백억 「달러」로 급격히 증가하고 있는 이들 다국적 기업은 어떤 나라에서는 자산 면에서 그 나라의 한해 예산보다 더 큰 경우도 많다. 이들은 단지 그 나라의 규제를 받을 뿐 그들의 이해는 어떤 나라와도, 심지어는 본국의 이해와도 상관이 없다.
90개국에 진출한 FNC 회사의 「스펜서」 사장은 『일국의 정치적 테두리는 너무 좁아 현대 기업의 전망과 발전을 제약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다국적 기업이 『소수 특수층이 아닌 지배적인 다수층의 긴절한 수요에 부응하기 위해 투자 기회를 찾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들의 통제 받지 않는 힘의 축적에 주목하는 회의주의자들은 이들의 주장을 순진한 단견으로 보고 있다. 「터론토」 대학의 「멜빌·워트킨즈」 교수는 많은 기업이 그들의 힘을 사용하는데 있어 상당한 자제를 보이고 있으나 항상 예외가 존재하며 『어떤 기관보다도 더 권위주의적』이라고 공박한다.
근대 다국적 기수의 고전적 형태로 볼 수 있는 영국의 동인도 회사는 거의 2백50년 동안 세계 인구의 5분의1을 지배해 왔고 30년대의 「유나이티드·프루츠」사는 「쿠바」에서 「에콰도르」에 이르는 4백만 「에이커」의 땅을 지배함으로써 낙지라는 별명을 얻었다.
「아프리카」의 「리베리아」는 한때 간단히 「파이어스톤」 (「타이어」 회사) 공화국으로 불리었다. 이 모든 것들이 과거의 망령으로 없어지는가 했으나 60년대에 들어 구주의 주요 산업이 착착 미국의 손에 넘어가자 「드골」 대통령은 이를 중시, 최초의 경고를 발했다.
그러나 「드골」은 이 같은 도전의 본질이 그의 생각보다는 훨씬 심각하고 광범위하며, 국가주의적 동인이 아닌 전혀 새롭고 독립된 동인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음을 간과했다.
결국 세계 기업은 미국뿐 아닌 비 미국 기업, 예를 들어 「지멘스」·「유니레버」·「필립스」·「폴크스바겐」 등으로도 나타나게 되었으며 이들의 가장 큰 문제점은 국가적 충성이 아니라 바로 그것의 결핍이었다.
이 같은 다국적 기업의 도전은 지난날 각국의 「내셔널리즘」과 충돌하면서도 꾸준히 성장해 왔으며 이제는 국경을 초월한 거인으로 군림하는 단계에까지 와 있다.
그러나 다국적 기업간의 경쟁, 그리고 토착 자본과의 대결은 아직도 미결의 장으로 남아 있다는 것이다.

<외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