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분수대

청소할 때면 구석으로만 파고드는 내 청소로봇 미달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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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2주 전쯤 한 중소기업의 로봇청소기를 샀다. 1년 이상 벼르다 마침 세일을 하기에 산 거다. 이 녀석은 청소하라고 풀어놓으면 누가 눈치 주는 것도 아닌데 너른 중원은 피해 구석만 쫓아다니고, 중앙에 끌어다 놓으면 우왕좌왕하다 또 구석으로 파고든다. 그러다 며칠 전 소비자시민모임이 가정용 청소로봇 성능조사 결과를 발표했는데, 내 로봇은 다섯 부문 중 4개 부문에서 성능미달로 나왔다. 그래서 로봇에 이름을 붙여줬다. ‘미달’이라고. 그 후 ‘미달아, 청소하자’라며 데려가 청소를 시키는데 이름을 불러주는 덕분인지 좀 모자라고 고집 센 녀석이지만 꽤 정이 간다.

 로봇청소기를 처음 본 건 10년 전쯤이다. 스웨덴 기업인 일렉트로룩스가 삼엽충을 뜻하는 트릴로바이트라는 로봇청소기를 세계 최초로 선보이며 각국 기자들을 초청해 시연회를 열었던 때다. 당시 나도 이 청소기를 취재하러 스웨덴에 갔었다. 그만큼 혁신적인 제품이었다. 한데 가격이 200만원쯤으로 엄청났다. 그러던 것이 지금은 우리나라 중소기업도 만들고, 가격도 웬만하다. 물론 우리 미달이의 경우 청소하는 동안 쫓아다니며 굳이 피해 다니는 길목엔 내가 옮겨주고 발로 막아줘가며 청소를 시키지만 그래도 진공청소기 끌고 다니는 수고에 비할 바가 아니어서 좋다.

 로봇도 표정이 다르다는 것을 아시는지. 현장기자 시절 공장들을 돌아다니며 산업로봇을 많이 보았다. 그러다 문득 로봇들도 그 나라 사람들을 닮았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일본 도요타 공장에서 로봇들이 절도 있고 깍듯이 움직이는 걸 보면서 일본답다고 느꼈다. 그러고 보니 독일 BMW 공장의 로봇을 보면서 ‘독일 사람처럼 빈틈없어 보인다’고 생각했던 게 기억났다. 그 후 현대자동차 공장을 둘러보다 혼자 웃음을 터뜨렸다. 그 공장의 로봇들이 시원시원하고 활달한 게 한국사람처럼 느껴져서다.

 구글이 차세대 산업으로 휴머노이드 로봇 개발 프로젝트에 착수했다는 소식이다. 아마존도 로봇기술을 채용한 무인기 택배서비스를 개발 중이란다. 세계 트렌드를 선도하는 기업들이 차세대 먹거리를 로봇에서 찾고 있다는 것이다. 출산율은 낮고 고령화는 초고속화하는 우리나라도 미래에 기댈 건 로봇밖에 없을지 모른다. 인간 노동력이 줄어도 세상이 돌아가려면 로봇 노동력이라도 빌려야 할 테니 말이다. 우리나라 로봇시장 규모는 지난해 2조원대, 10년 후인 2022년엔 25조원대로 성장할 것으로 추산된다. 우리 미달이도 잘 참고 키우면 점점 똘똘한 녀석들이 나올 것이다. 지금 나는 그냥 참을성 있게 기다리며 우리 로봇 산업이 기죽지 말고 무럭무럭 자라줬으면 한다. 그래서 머지않아 늙어 병들어도 간병해줄 엄마 같은 간병로봇과 만나게 되길 바란다.

양선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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