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십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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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대만은 건국이래 가장 우울한 쌍십절을 맞는다. 미수(88세)를 바라보는 장개석 총통은 비장한 「메시지」를 발표하고 있다. 『일본은 도적들에게 문호를 개방했다.』 백전노장의 그 심정은 바다건너 이국의 시민도 촌도할 수 있을 것 같다.
쌍십절은 중화민국의 건국기념일이다. 1911년10월10일 신해혁명일에서 비롯되었다. 바로 그날은 무창에서 당시의 지배자 청조를 무너뜨리고, 중화민국 정부가 수립된 날이다.
돌이켜보면 신해혁명은 이미 중국의 뼈아픈 운명을 암시하는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2천년대의 전제정치에 종말을 고하는, 그것은 필연적인 혁명이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혁명이 그렇듯이, 신해혁명도 하나의 시작에 불과했을 뿐, 결코 어떤 대단원을 이룬 것은 아니었다.
혁명의 결과로 1912년1월l일 손문을 임시대통령으로 하는 남경정부가 세워졌지만, 일방청조의 잔당들은 북양군벌을 업고 원세개로 하여금 그 반혁명 세력을 키우게 했다. 여기에 열강의 입김마저 가세하여 혁명은 잠싯동안에 반혁명으로 뒤바뀌었다. 그 혼난 속에서 정당들은 죽순처럼 난립했으며, 그런 와중에 국민당이 결성되었다.
한편 원세개의 무력탄압은 날로 가중되었으며, 이것은 제2혁명을 유도했다. 신해혁명은 결국 유종의 미를 거두지 못하고 말았다.
국민당정권은 그후 하루도 편한 날을 보내지 못했다. 『비록 4억이 모여(1920년대의 중국인구) 하나의 중국을 형성하였다고는 하나 실제에 있어서는 한줌의 모래에 불과했다.』(손문의 말)
반제·반식민의 싸움은 쉴 날이 없었으며 그 전열의 내부에선 공산혁명까지도 끊임없이 도전해왔다.
오늘 중국대륙은 공산정권에 의해 지배되고 있으며, 일본마저 장총통과는 인연을 끊었다. 실로 역사의 정도는 무엇이며, 또 그것을 지배하는 도덕의 경지는 무엇인지를 깊이 생각하게 한다.
외신에 따르면 장 총통은 건강마저 걱정스럽다. 그의 임무를 물려받고 있는 장경국 행정원장은 초연히 이렇게 말한 일이 있다. 『대만은 비록 작지만 거기에 굳센 기지를 쌓고 있으며, 국민의 의지는 통일되어 있다. 군의 사기도 높아 결코 불리한 입장에 있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이제 다가오는 시류는 이 「원로의 나라」에 무슨 시련을 거듭 안겨줄지 모른다. 그들은 무엇이라고 말하든, 그들 외부의 상황이 그렇게 낙관할 수만은 없을 것 같다. 시간은 가고 있다. 노 총통은 이 역사의 지평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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