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미만이 아름답다|정현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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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금가, 너는 근본적으로 착하다
이가, 너는 근본적으로 착하다
박가, 너도 근본적으로 착하다
최가, 너는 근본적으로 착하다
그렇다면 그대들이 칼을 쥐어야 하는가
아니다
그렇다면 그대들이 뜬구름을 쥐어야 하는가
아니다
농부, 직공, 소매상, 월급장이
너는 무력하다
너는 밭을 갈고
너는 흙에서 왔다가 다만 흙으로 돌아간다
너는 공장의 불 속에 너의 피를 구워 먹고
공장의 증기 속에 전망인 두 눈을 쪄 먹고
충혈된 희희낙락을 소주로 가열하며
우리들 유서 깊은 목구멍 속의 포도청에서
노동 노예다운 노예노동에 취(취) 한다
너의 주경야독은 아름답다
그러나 너의 밭과 너의 아스팔트
심은 콩 안 나는 너의 밭
심은 팥 안 나는 너의 아스팔트
그리고 너의 불켜진 방은
아마 쓸쓸하고 무의미하다
아, 쓸쓸함과 무의미만이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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