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하」공연 『키부츠의 처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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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작년 봄이래 침묵을 지켜오던 극단「산하」는「베른 슈타인」이라는 현역「이스라엘」작가의 작품을 공연함으로써·영·미나 독·불 위주의 번역극 판도에 이색 감을 주었고, 그 동안 축적된「에너지」를 무대 위에 고루 느끼게 해 주었다. 그러나 그「에너지」는 물리적인 힘에 그친 듯, 생의 기본적 체험의 심화에서 구해질 수 있는 감동으로 승화시켜 주는데는 허약했다.
작자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한 듯한 이 작품은「이스라엘」이 독립되기 이전인 30년대를 배경으로「키부츠」(집단농장)체제에 의해서 빚어진 개인의 욕망과 전체의 이익을 대립시키고 궁극적으로 전채가 개인에 선행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키부츠」개척자인 「엘리아」(전운)는 동료인 「에즈라」(주상현)의 딸「아비바」(나문희)를 사랑한 끝에 「키부츠」를 탈출, 도시로 사랑의 도피를 한다.
그러나 그들의 행복은 그들의 도피를 묵인했던 「엘리아」의 처(강효실)가 같은 논법으로 「에즈라」와 부부가 되어 두 사람 앞에 나타났을 때 흔들리기 시작한다.
한편「아비바」는「엘리아」를 떠나 젊은 기술자와 결혼, 새로운「키부츠」를 건설하는데 몇 년이 흐른 어느 날「유럽」에서 찾아든 이민들 속에 초라하고 늙은「엘리아」가 끼여 돌아온다.
그는 다시 여력을 바쳐 새로운「키부츠」의 건설을 위해 동행하겠다는「아비바」를 두고 떠난다.
개인의 욕망을 애욕의 형태로 표현한 이 연극은 작품의 골격이라 할 수 있는「키부츠」정신과 하나로 융합되지 못한 결점을 지니고 있다. 때문에 사랑의 이야기는「멜러드라머」로 가라앉고 정신은 관념으로 날아가 버리고 말았다.
작자 자신의 극작 술의 원숙함이 의심스러운 한편 그 두개의 요소를 하나로 융합시켜야 할 나문희의「아비바」가 도시 설득력이 없었다. 그것은 연출자(표재순)에게도 책임이 있는 일이겠지만 3년만의 연출이란 점을 고려할 때 오히려 대담한 작도에서 대립을 첨화시켜보려던 의도를 그간의 보상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한상철-연극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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