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8)제자 이혜봉|<제27화>경·평 축구전(13)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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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조선 축구단>

<편집자주=1929년부터 1933년에 걸친 경·평 축구전의 이야기는 12호에 걸쳐 평양군의 감독, 단장이었던 최일씨가 맡아주셨었습니다. 13회부터는 경성군의 골·키터로서 당대에 축구 뿐 아니라 농구·럭비·아이스·하키로도 이름을 떨쳤던 이혜봉씨가 맡기로 했습니다.>
평양군 뿐만 아니라 경성군의이야기는 이제까지 최일씨가 거의 정확하게 기술했다고 하겠다.
나는 1933년의 연말부터 그후에 벌어진 경·평전과 경·평 선수들이 중심이된 조선축구단의 이야기를 할까한다.
이영민이 중심이된 경성군은 33년10월 평양에서의 재1회 경·평 대항전을 마치고 겨울의 동면기에 들어갔다. 이때를 즈음해서 이영민과 쌍벽을 이루던 김원겸은 경·평 선수단을 선발해 조선축구단의 명칭으로 일본과 중국·만주 등지를 원정할 계획을 새웠다.
조선축구단은 이미 최일씨가 이야기 한바와 같이 그 당시에 백명곤씨가 맡아 운영해 오던 실질적인 전조선 대표단이었다.
만석꾼인 백명곤씨가 한창세월이 좋았을 때는 선수들이 성북동에 있는 그의 호화스런 별장에서 호의호식하며 코리아·밴드 인가하는 심퍼니 단원과 함께 지내기도 했다.
그러나 백명곤씨가 사업에 실패하면서 중국 상해에 원경하는 등 화려한 과거를 가졌던 조선축구단은 흩어지기 시작했고 특히 이영민의 경성축구단이 창단되면서 거의 와해직전에 있었다.
김원겸은 다시 조선축구단을 조직, 외국에 원정하기 위해 당시 만석꾼의 아들이며 한때 경성군의 단장이었던 최성면을 스폰서로하고 조선일보사의 이원용 기자를 매니저로 해 선수단을 조직했다.
최성면은 만석꾼의 아들이었지만 돈 씀씀이 너무도 헤퍼서 그의 아버지는 여간해서 돈을 내주지 않았다.
하지만 김원겸이 조직한 조선축구단이 멤버를 보고는 그의 아버지도 『이만하면 돈을 내주어도 괜찮다』고 생각했던지 정확한 액수는 기억이 안 나도 일본·중국·만주를 원정 다닐 기금을 내놓았다.
이때의 멤버는 단장 최성면, 감독 백명곤, 매니저 이원용, 주장 김원겸, 선수 이혜봉 방창복 정용수 강기순 김용식 박일순 윤창선 박의현 최성손 배종호 채금석 김영근 이정현 등 모두 18명이었다.
멤버를 봐서 알 수 있듯이 경·평 선수들이 고루 끼었지만 그래도 보전 출신이 중심이된 것은 김원겸이 때문이었다.
그리고 엄청난 부자로 과거의 전주였던 백명곤씨가 최성면 단장 밑에 감독으로 내려앉은 것이 이상했지만 백씨는 그만큼 축구를 사랑하고 아꼈기 때문에 감독의 자리도 감수했다.
이 선수단은 종로의 조선여관에서 김원겸의 코치로 1개월 이상 연습을 하면서 다음해 정월 초순의 일본원정을 기다렸다. 계획은 일본을 갔다가 상해·천진을 돌아오려 했던 것이다. 그러나 떠나는 며칠 전 원정비를 쥐고 있는 최성면과 이원용 매니저가 감쪽같이 행방불명이 되고 말았다.
여러 가지 추측이 나돌았지만 최 단장이 평소에 좋아하던 애인과 함께 친구인 이원용과 셋이서 밀월여행을 떠났다는 풍문이 지배적이었다.
선수들이 낙심천만으로 고개를 떨구고 있자 백명곤씨도 하는 수 없다는 듯이 선수들에게 5원씩인가 여비를 주고 해산했다.
이때 평양까지의 기차 삯이4원50전이었으니까 그만하면 모두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그러나 선수들은 하도 어이가 없어서 그 돈으로 모두 술을 먹고 울분을 달래었다. 그런데 다음날 아침 김용식이 경성역에 다녀오더니 무슨 일이 있어도 일본에는 가야한다고 했다.
그 이유는 일본에서 포스터를 붙이는 등 모든 대회준비를 하고 있어서 도저히 약속을 어길 수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이 이야기는 이미 일본에 선발대로 갔었던 정인창이 전해온 것이다.
딱해진 것은 백명곤씨였다.
그는 그 길로 뛰어나가 돈을 거두었다. 길에서 만나는 친구나 평소에 그에게 신세를 진 사람들에게 10원, 20원씩을 거두었다. 그래도 돈은 모자라서 다시 돌아온 선수 14명 중 10명만을 데리고 가서 선수가 모자라면 일본 유학생들을 뛰게 할 작정이었다.
부랴부랴 여장을 꾸려 2월2일 관부연락선을 타고 가는데 돈이 모자라 선수들은 모두 학생권을 사가지고 학생행세를 했으며 30전인가 하는 도시락 한 개로 일본 시모노세끼까지 도착했으니 얼마나 급하고 어려웠던 가는 쉽게 알 수 있다. <계속> 【이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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