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무적인 평가 조정 제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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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국제 통화 기금 (IMF) 이사회는 오는 25일의 연차 총회를 앞두고 국제 통화 제도 개혁에 관한 중간 보고를 발표했다. 이 중간 보고는 앞으로 있을 제도 개혁을 위한 협의 자료로서 제시된 것인 만큼 매우 중요한 시사를 내포하고 있어 주목할 만 하다.
이 중간 보고는 새로운 국제 수지 조정·결제 「메커니즘」의 도입이라는 기본 과제를 해결하기 위한 몇 가지 방법을 제시하고 있는데, 특히 우리의 주목을 끄는 점은 국제 수지에 기초적인 불균형 현상이 있는 경우에는 당사국이 의무적이며 자동적으로 평가 조정을 단행하도록 해야하며 이를 위해 적절하고도 객관적인 지표를 원용할 것과, IMF의 지도성 강화, 그리고 평가 조정을 회피하는 나라에 대한 국제적인 압력을 높이는 방법이 강구되어야 한다는 의견이라 할 것이다.
또 「달러」 결제 중심의 현 IMF 체제를 특별 인출권 (SDR) 금 및 IMF 「포지션」 등 주요 준비 자산으로 결제하는 자산 결제 제도의 채택 방안, SDR 대체 계정 신설로 과잉 「달러」를 SDR로 교환할 수 있는 제도의 채택 방안 등도 주목할만한 의견이라 할 수 있다.
이들 주요 개혁 방안은 평가 조정을 가급적 회피하려는 현 IMF 정신에서 크게 벗어나는 것일 뿐만 아니라, 「달러」체제의 탈피가 불가피하다는 점을 강력히 시사하는 것이라 하겠으며, 때문에 현 IMF 체제가 근본적으로 변질되지 않을 수 없음을 다시 한번 예고하는 것으로 보아 무방하다.
그러나 현 IMF 체제가 근본적으로 변혁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주요 선진국이 인정하고는 있지만, 각 국의 이해 관계가 상충하는 이상 IMF 체제 개혁 문제가 단 시일 안에 해결될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사실도 분명한 것이며, 때문에 미국과 EEC 제국 등 주요 선진국들의 문제 해결을 위한 이해 조정 과정이 더 주목되어야 할 것이다.
우선 IMF 중간 보고서가 제시한 강제적 평가 조정 제도는 비록 그것이 채택된다 하더라도 이를 당사국이 받아들이지 않을 때, 실효성이 없다는 문제점이 있다. 즉 이 제도가 채택되는 경우, 그 첫 번째 적용 대상국은 미국이라 하겠는데 기초적 불균형에 대한 해석 문제 때문에 이를 미국이 받아들일 공산은 거의 없다고 봐야하는 것이다. 미국은 현재의 국제 수지 역조 경향이 기초적 불균형성을 내포한 것이라고 인정하지 않고 있는 것이며, 때문에 타국이 미국에 협조해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실정이다.
다음으로, 자산 결제 제도나 「달러」의 SDR 대체 안도 금가 인상과 금 중심의 결제 제도를 주장하는 「프랑스」의 입장 때문에 그리 쉽게 채택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하여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구주 공동 시장 재상 회의가 11일 「유럽」 통화 기금 (EMF) 창설에 원칙적으로 합의한 사실이라 하겠다.
EMF가 성공적으로 설립 발전되어 단일 통화 체제로까지 발전할 수만 있다면 SDR 중심 체제 보다는 「유럽」 통화 중심 체제로 IMF가 개혁될 가능성도 없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그러한 상황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꽤 장기간의 시일이 소요될 것이겠지만, 「유럽」 통화의 출현 가능성이 EMF의 창설로 커지는 이상, EEC 제국이 오히려 IMF 체제의 개혁을 지연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문제를 이와 같은 각도에서 분석 판단할 때, IMF 개혁론과는 관계없이 현실적으로 국제 통화 상의 파동은 앞으로도 거듭될 것이며, 때문에 우리는 국제적으로 보호주의적인 무역 정책이 당분간은 강화될 것임을 충분히 예상하여 국제 수지 대책을 마련해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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