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살릴 길, 기업 투자뿐인데 … 정치 혼란에 눈치만 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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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조만간 올 들어 네 번째 무역투자진흥회의를 주재한다. 새 정부 출범 이후 지난 4월 30일 첫 회의부터 꼬박꼬박 직접 챙기는 자리다. 회의 명칭 그대로 박근혜정부는 ‘무역’과 ‘투자’에 사활을 걸고 있다. 이 자리가 이렇게 특별한 이유는 무엇일까. 지금 우리 경제가 처해 있는 상황을 보면 왜 그런지 바로 알 수 있다. 우리 경제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까지 두 해 연속 2%대 저성장의 늪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다.

 여기에서 탈출하기 위해 정부는 상반기에 대규모 재정을 동원해 경기회복의 불씨 살리기에 나섰다. 기업 투자활성화의 마중물로 17조3000억원 규모로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한 이유다. 이 덕분에 지난 3분기 한국 경제는 27개월 만에 전기 대비 1%대 성장률을 기록하며 경기회복의 싹을 틔웠다.

 하지만 지금 한국 경제는 다시 기로에 서게 됐다. 소비·투자·고용이 함께 살아나며 성장률이 3%대로 회복되는 선순환으로 가느냐, 다시 2%대 저성장의 늪에 주저앉느냐의 갈림길이다. 어느 쪽으로 기울지는 알 수 없다. 확실한 것은 세수 부족이 극심하고 이미 올해 재정적자가 29조원에 달해 정부가 더 이상 경기부양에 나설 여력이 없다는 점이다. 이런 상황에서 경기회복을 이끌고 갈 추동력이 나올 곳은 민간 부문, 즉 기업 투자밖에 없다는 게 정부와 전문가들의 판단이다.

 박근혜정부는 이런 점을 감안해 올 들어 3차에 걸쳐 대규모 투자활성화 대책을 쏟아냈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관련 입법 102개가 국회에 제출돼 있다. 이 중에서도 15개는 그간 손톱밑 가시처럼 기업 투자를 가로막아 왔던 입지·환경·산업단지 및 세제·금융 규제를 푸는 법안들이다.

 그런데 국회가 민생을 볼모로 정쟁(政爭)을 벌이면서 이들 법안은 모두 동면(冬眠) 상태다. 배상근 전국경제인연합회 경제본부장은 “15개 법안과 관련된 투자 프로젝트는 모두 ‘레디 투 고(ready to go·준비완료)’ 상태여서 법안만 통과되면 즉각 돈이 투입된다”고 말했다. 현오석 부총리는 “15개 법안은 하나하나가 모두 경제 살리기의 마중물이 될 법안”이라며 “이를 위해선 국회 계류 법안이 반드시 올해 안에 통과돼야 한다”고 말했다.

 국회가 법안 심사를 외면하는 사이 기업 은 투자 방향을 잡지 못한 채 관망만 하고 있다. 새 정부 출범 이후 30대 그룹이 약속한 연간 투자계획이 155조원에 달하지만 10월 이후에는 이행 상황이 확인되지 않고 있다. 김동원 고려대 경제학과 초빙교수는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를 제외하면 치열한 국제경쟁에 밀려 경쟁력이 약화돼 있고 내수침체도 극심해 돈을 벌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정치권 혼란이 불확실성까지 증폭시키면서 기업들이 투자를 포기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상황이 이런데도 국회는 꿈쩍할 조짐도 없다. 기재부의 모 국장은 “친분이 있는 한 야당 국회의원에게 법안 통과 협조를 요청했더니 ‘나도 정치인이야. 왜 이래’라는 핀잔을 들었다”고 전했다. 어떤 법안이든 개인 소신보다 당론에 따라 판단하겠다는 의미여서 투자활성화 법안의 험난한 앞길을 예고한 것이다. 국회에서 막힌 부정적 여파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

◆특별취재팀=김동호·최준호·이정엽·최선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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