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바수술 이야기]15. 가장 안전한 재료를 찾아서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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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명근 건국대병원 흉부외과 교수

몇 해 전 정신과를 전공하는 딸이 교과서에 나오는 강박성 인격 항목을 읽어주면서 내게 맞는 항목이 너무 많다고 하여 함께 웃었다.

타고난 성격도 있겠지만, 환자의 생명과 직결되므로 99%가 아닌 100%의 완벽함을 요구하는 나의 일 탓도 있다. 따라서 나는 나의 완벽주의를 나의 책임감과 소명에 따른 동전의 다른 면이라고 생각한다.

미세한 오차에 생사가 갈리는 것을 수도 없이 봐 왔다. 손끝에 다른 사람의 생명을 책임지는 것만큼 무거운 일이 또 있을까.

그래서 나는 후학들에게 환자의 진단, 수술 준비와 수술 후 처치과정에서 철저할 것을 강요한다. 수술 방법이나 발전된 의료 기기만으로는 사고를 최소화시킬 수 없다는 것을, 자칫하면 위험에 빠질 뻔한 환자를 살리는 데에는 반복 또 반복해서 확인하는 과정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서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새로운 대동맥 판막성형술의 개발을 집 짓는 일에 비유할 수 있다. 1992년 말까지 내가 했던 작업은 터를 잡고 설계도면을 그리는 일이었다. 집을 지을 때 지붕·벽·내부에 사용할 재료가 각각 다른 것처럼 1993년 초부터 내게 주어진 일은 판막륜과 동관이행부를 교정할 때 사용할 재료를 개발하고, 판막엽 재건에 필요한 재료를 선택하고 동관이행부 축소술, 판막륜 고정술, 대동맥동의 축소술과 판막엽 재건술 과정에 사용되는 봉합사를 결정하는 일이었다.

만약 내 선택이 빗나간다면 안전하고 내구성있는 수술법은 기대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따라서 지나치게 강박적이라는 비난을 들으면서도 후보로 올라온 재료와 구조안을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

돌이켜 보면 당시 재료에 대한 연구만 3년 이상 걸렸다. 전체 연구 기간에서 재료 연구에 들인 시간이 상당한 비중을 차지했다. 서두른다고 될 일이 아니었다. 더 오래 걸려도 가장 안전한 재료를 찾는 것이 너무나 중요했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이런 연구에 걸린 시간이 너무 더디고 지루하다는 느낌이 들었을 정도였다,

먼저 확장된 판막륜을 고정시킬 수 있는 구조물의 개발이 시작됐다. 대동맥 판막륜의 반은 심실 중격을 이루는 근육부로 이뤄져 있고, 나머지 반은 승모판막과 연결된 섬유부로 이뤄져 있다. 지속적으로 가해진 압력으로 늘어난 섬유부를 고정해 평생 이 부분이 더 이상 확장되지 않게 단단하게 고정해 줄 수 있는 재료가 필요했다. 최종적으로 재료가 결정되기까지 적용 실험은 100번도 넘었다. 지독하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였다.

다음으로 고민했던 작업은 동관 이행부를 축소시키는 재료의 개발이었다. 인조 혈관의 재료를 이용하여 수십 차례 실험을 했다. 인조혈관의 문제점을 개선하고 또 개선하면서 수십 차례의 실험을 반복한 끝에 가장 이상적인 재료를 찾아낼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필요한 것은 판막엽을 재건에 사용되는 조직의 결정이었다. 본인의 심낭 조직, 동물의 심낭 조직, 동물의 판막, 이렇게 크게 세 종류의 조직을 가지고 동물실험을 통해 심장 판막을 재건하는 실험을 했다. 수많은 실험을 통해 심낭 조직이 가장 견고하고 안전한 판막엽 대체물이 된다는 결론을 내렸다.

아울러 각종 수술과정에 필요한 봉합사도 실의 장력을 알기 위해 반복적으로 실험해 겨우 결정할 수 있었다. 수많은 동물실험을 통해 가장 이상적으로 판단되는 재료들이 개발될 수 있었던 것은 1996년 말이었다. 모든 재료가 결정된 후 한동안 들뜬 기분을 가라앉히기 힘들었다.

이제 정말 내 손 안에 지난 50년간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대동맥 판막성형술이라는 큰 보물을 움켜진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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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심교 기자 simkyo@joongang.co.kr <저작권자 ⓒ 중앙일보헬스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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