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 월급 몽땅 내놓는 찬차마요 '빈자의 대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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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페루 찬차마요 정흥원 시장(왼쪽)이 한솥도시락 이영덕 대표와 손을 맞잡으며 환하게 웃고 있다. 2010년 중남미 첫 한인시장에 당선된 정 시장은 이 대표의 후원에 힘입어 커피농가의 제값받기 거래에 힘쓰고 있다. [사진 아트스튜디오 김광일]

페루 수도 리마에서 동북쪽으로 320㎞ 떨어진 농업도시 찬차마요. 인구 20만 명 규모의 이곳을 이끄는 시장은 한국인 정흥원(66·현지명 마리오 정)씨다. 2010년 이민 한인으로서 시장에 당선됐다. 중남미 이민사에서 최초였다. 4선을 노리던 현직 시장을 큰 표 차로 누르고 임기 4년 시장직에 올랐을 때, 사람들은 ‘이민자의 성공사례’로 봤다.

정작 이번 한국 방문 때 정 시장은 비행기 삯이 없어서 딸에게 신세를 졌다. 시장 월급 전액을 빈민·불우아동을 돕는 데 쓰느라 수중에 가진 돈이 없어서다.

 “대가를 바라서가 아니라 천성이 그래요. 배곯는 사람, 아픈 사람에게 한 푼이라도 쥐어줘야 마음이 편해요.”

 지난달 29일 서울 강남의 카페에서 만난 정 시장은 정치인·공무원이라기보다 동네 가게주인마냥 서글서글한 인상이었다. 실제로 시장 당선 전 사람들은 그를 ‘빈자의 대부’라고 불렀다. 약값이 없는 사람, 등록금이 없는 학생에게 사람들은 “저기 식당을 하는 마리오 정을 찾아가라”고 했다.

버는 족족 어려운 이들을 돕는 그를 정치권이 눈여겨보고 시장 후보로 공천했다. “중학교도 못 나오고 이민자로서 그 사회를 속속들이 알지도 못하는데, 시민들이 저를 믿어줬습니다. 적어도 우리를 속이고 부정부패를 할 사람은 아니라고 봤나 봅니다.”

 또 다른 당선 동력은 조국이었다. “‘내 나라 코레아의 발전을 보지 않았느냐’며 농업도시 찬차마요의 발전상을 제시했습니다.” ‘지킬 수 있는 약속만 하고, 한 약속은 반드시 지킨다’는 신념으로 임했다. 한국은 실질적으로도 버팀목이 되고 있다. 코이카(KOICA·한국국제협력단)가 250만 달러를 지원해 신설하는 보건소가 내년 중 완공된다. 열악한 상하수도 시설을 개선하는 작업에 서울시가 기술 지원을 나섰다.

“도움 받던 나라 한국이 다른 나라를 돕는 데 연결고리가 돼 기쁘다”는 그는 매일 오전 6시에 자전거로 찬차마요 구석구석을 훑는다. 시민의 불편을 눈으로 확인하고 개선책을 내는 게 ‘시민의 공복’으로서 할 일이라고 생각해서다.

 한국에서 스웨터 공장을 하던 그가 아르헨티나로 떠난 건 1986년. 세 자녀 중 둘이 희귀병으로 먼저 세상을 뜬 아픔이 그를 떠돌게 했다. 96년 다시 페루 리마로 옮겼고 찬차마요에 자리잡은 건 2000년 즈음해서다. 지난해 26년 만에 한국에 나와보니 초고층 빌딩숲이 감탄스러울 정도였다. 그러나 올해 다시 찾은 한국은 실망감을 안겼다.

 “한 달여 머무르면서 TV로 국회 인사청문회를 보니 소리 지르는 의원들뿐이더군요. 못사는 나라 페루의 의회도 이렇지는 않아요. 그동안 한국 자랑해왔는데, 돌아가서 뭐라고 해야 할지요. 한국 경제는 발전했어도 정치는 낙제급입니다.”

 이번 방문은 신병 치료 차원이었다. 이를 물심양면 후원해 준 이가 한솥도시락 이영덕(65) 대표다. 이 대표는 지난해 5월 KBS 다큐멘터리를 통해 정 시장을 알게 돼 이때부터 찬차마요시를 후원해 왔다. 특히 시민 60%가 종사하는 커피농업을 지원하기 위해 테이크아웃 커피숍 ‘찬차마요’를 그해 10월 오픈했다. “찬차마요 농가는 유통상인에 휘둘리지 않고 제값을 받아 좋고 한국인은 최고 품질 커피를 마실 수 있어 윈윈”이라는 게 이 대표의 설명이다.

정 시장은 “다른 것으로 갚을 길이 없으니 농가가 더 좋은 커피를 생산할 수 있게 참된 시정을 펼치도록 하겠다”고 답했다.

강혜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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