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지식] 시인의 동물 읽기 … 인간보다 더 인간 같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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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꼬리 치는 당신
권혁웅 지음
마음산책, 608쪽
1만5500원

‘투구게와 생리대’, 감이 오시는지…. “우리와 다르게 투구게는 파란색 피를 흘린다. (…) 생리대 광고에서는 새지 않아요, 선전하면서 붉은 피 대신에 파란 물을 붓지. 그게 그럼 투구게 피였던 거야?” 희한한 상상력이다. 백과전서파 저리 가랄 동물에 대한 지식과 시시콜콜한 인간 탐구가 엮인 SNS 시대의 『산해경(山海經)』이다.

‘누가 이 여인에게 돌을 던지랴.’ 『성경』도 전복된다. “(돌이 귀한 남극에서) 돌로 둥지를 짓는 아델리펭귄 암컷은 다른 수컷을 찾아가 교미를 하고 그 대가로 돌을 얻어온다. 생계형 매춘이라고나 할까. 누가 이 여인에게 돌을 던지겠어요? 던져주면 고맙게 받을게요.” 터진다, 웃음이. 『애인은 토막 난 순대처럼 운다』 는 시집을 낸 시인이니까.

권혁웅(46) 시인은 자타가 공인하는 동물 마니아다. ‘시인의 동물감성사전’이란 부제가 붙은 이 책에는 500여 종이 등장하는데 듣지도 보지도 못한 것이 태반이다. 그림이 다 붙어있는 게 신기할 지경이다. 그는 왜 동물에 탐닉할까.

“동물 이야기를 읽다 보면 아, 저 동물은 동물의 가면을 쓴 사람이구나 하고 감탄할 때가 많다. 어쩌면 사정은 반대일지도 모른다. 아, 저 사람은 사람의 가면을 쓴 동물이구나 하고 말이다.”

‘찾아보기’에 등장한 온갖 생물 가운데 빈도수가 가장 많은 건 ‘인간’이다. 결국 인간 관찰기인 셈이다. 시인은 이 책 이후로 인간 제일주의자는 아니라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시인은 연재나 청탁의 힘을 빌리지 않고 이 두툼한 책을 전작으로 썼다. 편수는 많지만 짧은 글이니 원고 매수는 적었겠다. 가끔 트위터에 조각 글을 올렸는데 호응이 컸다고 한다. ‘140자 압박과 강박’의 매혹이 불러온 새로운 형식의 글쓰기는 시인의 자질에 힘입어 ‘꼬리 치는 당신’이 됐다.

아홉 쪽에 이르는 참고문헌을 보고 입이 딱 벌어지려는 순간, 시인의 부탁이 날아든다. “오두방정. 그렇게 삶이 날마다 축제였으면 좋겠다. 이 글을 읽으신 여러분에게 드리는 마지막 인사.”(586쪽)

정재숙 문화전문기자 johana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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