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 타는 영동…「거북 등 논바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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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속초=장창영 기자】6월 들어 50여일 동안 비 한 방울이 내리지 않았다. 영동의 곡차 야촌 벌과 아야진의 「이론개펄」 5백89㏊는 절반 이상이 거북 등처럼 갈라지고 논바닥은 숫제 「콘크리트」 바닥처럼 굳어 버렸다. 바싹 탄 논바닥에서는 벼 포기가 타 죽어가고 감자 등 밭곡식은 이미 50%가 감수됐다.
고성군 토성면 아야진 1구 정정우씨 (42)는 7천평의 논 가운데 5천평이 말라붙고 1천5백평의 감자밭에서는 여느 해 같으면 감자 30가마를 캤는데 올해는 7가마를 거둬 『하늘도 너무하다』고 탄식했다.
논에서 풀을 뜯고 있던 정씨의 동생 영길씨 (21)는 『불에 달군 것처럼 발바닥이 화끈거려 김을 맬 수가 없다』며 어처구니 없어 했다.
같은 마을 안복기씨 (39)도 『지난봄 한 가마에 3천3백원씩에 사 6백평에 심은 감자가 알도 미처 들기 전에 타 죽어 씨 값도 못 뽑았다』고 한숨지었다.
죽왕면 야촌리의 황토 개펄엔 뽀얀 먼지만 일어 대파도 못하고 버려진 땅이 18정보나 되는데 토성면 운암리 28 가구의 25정보는 몽땅 말라 『당장 뭘로 목줄을 이을지가 막연하다』고 발들을 굴렀다.
속초 농촌지도소의 작황 조사에 따르면 오히려 정상적으로 자란 천수답의 벼는 지금 키가 50㎝, 가지도 4∼5가지로 뻗었으나 물이 말라붙은 논은 20∼30cm 밖에 안 자라 전혀 가지를 치지 않는다고 했다.
아야진의 방축골, 학사평 지구에는 벼가 자라기는커녕 아예 포기째 타 죽어 가는 논이 늘어가고 있다. 그런가 하면 하천·저수지가 바닥 나는 바람에 곳곳에서 식수난이 벌어져 상수도의 제한 급수에 선박·가공 공장들까지 생산에 지장을 받고 있다.
강원도는 타 들어가는 논밭 1만7천ha를 어떻게든 살리기 위해 지난 14일 한해 비상령을 내려 주민·학생 등 연인원 7만명을 물 푸기 작업에 동원하고 있으나 워낙 물이 달려 먼지를 갈아 앉힐 정도이다.
영동 지방 가뭄 현황을 둘러보기 위해 18일 하오 헬기 편으로 속초에 들른 김보현 농림장관은 시내 노학동의 학사평 가뭄 현장을 보고 『예상외로 심하다』고 낯빛을 흐리며 『앞으로 도가 동원하는 양수기 6백96대 중 장비 74대의 유류는 모두 국가에서 지원하겠다』고 말하고 학사평 1백32가구 7백16명의 자활 정착민들이 상환하지 못하고 있는 2천6백 만원의 각종 융자금을 『모두 감면해 주겠다』고 약속했다.
도는 지금 한해 극복 3단계 계획을 짜 18일부터 30일까지 1만6백7ha에 들샘 l천2백78개, 하천보 2백98개 등 모두 2천5백76개의 수원을 개발하는 한편 양수기 6백96대 등 장비 7백40대와 연인원 53만3백56명을 동원키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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