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대학생의「보수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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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오늘의 한국대학생들은 어떠한 정치적 태도를 가지고있는 것일까. 그것은 학생들 자신이나 학부모들이나 그리고 교육자들이나 위정자들이 다같이 궁금해하는 문제라 할 수 있다.
서울시내 어느 대학교의 부설연구소가 지난해 동 교생 4천3백여 명을 상대로『대학생의 동태조사』를 실시한 결과 우리 나라 대학생들은 대체로「보수적」인 성향을 드러냈다고 보고한바 있다. 즉 자유민주체제와 사회민주체제의 양자택일에 있어 응답자의 59·7%가 전자를, 그리고 31·8%가 후자를 이상적인 정치경제체제로 간주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체제선택에 앞서는 태도차원에 있어 학생들이 급진적이냐 보수적이냐를 알아본 조사의 결과는『한국의 대학생은 급진-보수라는 차원에서는 영국의 보수당의 입장정도』라는 것이다.
한편, 학생운동을 함으로써 사회참여를 하는 것에 대한 학생들의 의견은 ⓛ『학생이나 국가에 모두 유익하다』는 의견이 44·1% ②『학생에게는 손해이나 국가로서는 유리하다』고 보는 것이 45·7% ③『학생이나 국가에 모두 해롭다』는 것이 6·8%의 비율로 갈라졌다고 한다.
물론 이 조사는 그 설문대상이 된 모집단이 오직 중앙의 1개 대학에 국한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조사방법이나 설문의 설정에 있어서도 미심스러운 점이 없지 않다. 따라서 이 조사의 결과를 그대로 완벽한 것, 궁극적인 것으로 일반화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 발표된 이 표본조사의 결과가 많은 사람들의 큰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는 한국대학생들의 행 태를 밝혀보려는 한 시도라 할 수 있기 때문에 이 기회에 우리들의 소견을 곁들여 토의에 자하려 하는 것이다.
우선 사회참여에 대한 대학생들의 의견은 성인사회의 반성을 촉구하는 한 계기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전체적으로 학생운동이 국가에 유익하다고 보는 의견이 89·8%라는 압도적 비율을 차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학생에게도 유익하다고 보는 의견(44·1%)보다는 학생에게는 손해를 준다는 의견(45·7%) 이 많다는 것은 국가이익과 개인이익, 공익과 사익의 괴리를 학생들이 느끼고 있다고 풀이될 수 있다. 과격하게 표현하면 그것은 학생들이 사익을 위해서는 국가의 공익을 저버릴 수밖에 없다는 얘기가 된다.
바꿔 말하면 나라를 위한다는 것은 만만치 않은 자기희생을 각오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요, 이 같은 의식의 분열은 안일한 도피주의나 비장한 위험주의의 기로에서 양자택일을 강요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이러한 양자택일의 상황 속에서. 학생들의 정치적 태도가 보수적인 것이라 할 때에 과연 그것이 국가사회의 내일을 위해 바람직스럽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일까. 그러나 그에 앞서 우리는『진보 속 사회주의 내지는 공산주의』대『보수 속 자유주의 내지는 민주주의』라는 종래의 대립도식을 무 반성적으로 확 집 하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야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해방 후 한 세대 동안을 일인독재체제로 굳어버린 북한이「보수」가 아니고, 단군 이래의 가난을 벗어나기 위하여 발버둥치고 있는 오늘날 한국적 민주주의하의 교육개혁 등이「보수」의 소산이라고 만 할 수 있을 것인가. 사회민주체제가 과연 조사보고서의 결론에 정의하고 있는 것처럼『국가권력의 통제와 계획의 노력』이라고 한다면 그것이 자유민주체제를 신봉하는 한국적 현실의 반대개념이 될 수 있을 것인가.
통계적인 사회조사에 앞서「보수」와「진보」,「자유민주체제」와 「사회민주체제」등의 기본개념에 대해서 오늘의 한국적 상황하에서의 재음미가 선행되어야 하리라고 우리는 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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