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인의 마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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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퇴근시간이기 때문에 버스는 시발점에부터 만원이었다. 만원버스가 청계천을 지나 서울운동장 앞에 이르렀다.
빈 몸으로 오르기도 힘든데 30대의 한 부인이 등에 아기를 업은 채 큼직한 함지박을 들고 오르느라고 진땀을 뺐다. 그 부인의 옷차림은 퍽이나 초라했고 함지박에는 팔다가 남은 듯한 세모꼴로 자른 큼직한 찐빵이 너댓개 남아있었다.
등에 업힌 아기는 고통스러웠던지 마구 울어대고 아기엄마는 소맷자락으로 흐르는 땀을 씻었다.
이때였다. 직공인 듯한 한 소년이 누구보다도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아기엄마한테 앉으라고 했다. 아기엄마는 정녕 미안한 표정으로 좌석에 앉았다.
광주대단지가 종점인 이 버스가 천호동을 벗어났다. 약수터입구에서 좌석을 양보한 소년이 하차할 준비를 했다. 이때 아기엄마는 빵 두 개를 종이에 싸서 소년에게 주었다. 복잡한 버스에서 좌석을 양보해 준 소년이 무척 고마웠던 모양이다.
그러나 소년은 당연한 일을 했다는 듯 한사코 빵을 받지 않았다. 그러자 아기엄마는 어디선지 껌을 한 갑 꺼내 가지고 재빨리 소년의 호주머니에 넣어주었다. 소년은 그것도 모르고 그냥 내려버렸다. 아기엄마는 고마움에 조금이라도 보답했다는 듯 적이 밝은 표정이었다.
하찮은 일 같지만 곁에 있던 많은 사람들은 이 가난한 부인의 마음에서 퍽 따뜻한 정을 느꼈고, 아울러 이 부인에게서 하루속히 가난이 사라지길 빌어주는 듯한 표정들이었다. <곽옥란(서울 성동구 오금동 268(3통8반)이봉수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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