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드 피치] 190. 빅 초이가 2번 타자인 이유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5면

'최희섭(사진) 2번 타자론'이 대세다. 그는 시범경기 중반부터 2번 타순에 자주 기용됐다. LA 다저스 홈페이지도 그가 6일 새벽(한국시간)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와의 개막전에 2번 타자로 나설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1m96㎝, 108㎏의 거구다. 별명도 '빅 초이'다. 장거리포를 앞세운 파워히터다.

2번 타자 고유의 기능은 뭔가. 작전수행 능력과 방망이를 다루는 솜씨, 야구 센스, 높은 출루율 등이다. 1번 타자가 진루했을 때 주자 뒤쪽(1루 쪽)으로 타구를 보낼 수 있는 성향과 번트.히트앤드런 등 감독의 작전을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이 뛰어나야 한다. 힘보다는 재치, 우람한 덩치보다는 날쌘 몸놀림이 먼저 떠오른다. 한국 프로야구 초창기 뛰어난 2번 타자로 배대웅.김광수.김재박 등이 기억되는 이유다.

그러나 1990년대 '파워의 시대'를 맞이하면서 추세는 변했다. 모든 타자가 홈런을 때릴 수 있고, 한 이닝에 1점을 얻기보다는 대량득점을 선호하는 공격적 성향이 유행하면서 전체 라인업의 개념이 바뀌었다. 1, 2번 타자 모두를 득점 위주의 선수, 즉 중심 타선에 밥상을 차려주는 '테이블 세터'로 부르게 됐다. 그 가운데 2번 타자는 1번 타자를 진루시키는 것뿐만 아니라 한방에 홈으로 불러들이는 장타력까지 겸비한 선수를 선호하게 됐다. 지난해 리그 챔피언 결정전에 오른 네 팀의 2번 타자를 보면 그 추세가 뚜렷하다. 알렉스 로드리게스(뉴욕 양키스), 래리 워커(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카를로스 벨트란(휴스턴 애스트로스) 등 '슬러거'들이 2번 타순에 배치됐었다.

국내 프로야구도 장타력을 갖춘 공격적 2번 타자를 선호하는 추세다. 본격적인 변화는 95년 OB 베어스 김인식 감독이 1m88㎝의 장신 장원진을 2번 타자로 키워내면서부터가 아닌가 싶다. 한화 이글스로 옮긴 김 감독은 올해도 지난해까지 3번 타자였던 데이비스를 2번으로 끌어올려 '강한 2번 타자'를 선호하는 개성을 이어가고 있다.

최희섭은 기록과 성격에서도 '신개념 2번 타자'에 적격이다. 우선 높은 출루율이 이를 뒷받침한다. 그는 스프링캠프 0.371, 지난 시즌 0.370, 통산 0.356의 출루율을 기록하고 있다. 휴스턴 애스트로스 필 가너 감독은 "출루율 0.350~0.360 정도면 충분한 2번 타자"라고 주장한다.

또 '치려고 스트라이크에 방망이가 나가는 것이 아니라 스트라이크를 골라 방망이가 나가는(같은 말이 아니다)' 그의 타격 성향은 볼넷을 많이 얻어낸다. 스프링캠프 볼넷 13개로 팀내 1위. 훌륭한 테이블 세터다. 2번 타자는 메이저리그 전문가들이 그에게 재단해준 옷이다.

<텍사스에서>

이태일 야구전문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