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교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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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나무는 클 수록 맞는 바람이 세다는 속담의 뜻은 깊다. 나무의 크기가 크면 위용이 있어 보기에도 좋거니와 그 정상에는 여러 종류의 작은 새들이 보금자리를 펴고, 그 아래에는 넓은 그늘이 만들어져서 사람들이 모여 환담을 나누기도하고 장기도 두면서 시원한 한때를 즐긴다. 이래서 교목은 위대와 관용의 상징일 수 있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교목은 고난과 시련의 대상이기도 하다. 그것은 다른 작은 나무들보다도 훨씬 더 거센 바람을 맞으며 실상 작은 바람이 한시라도 잦는 때가 없다. 하지만 바람은 나무의 건강에 좋다. 해충에 의한 침식을 막아주며 또 나무의 성장을 도와준다. 뿌리가 깊이 내려져 있고 몸체가 튼튼한 교목은 웬만한 바람이 불어보아야 약간 흔들릴뿐 쓰러지지는 않는다.
우리의 사회생활에서도 많은 교목들을 본다. 그들은 남보다 높은 지위와 권세가 있으며, 동시에 많은 아랫사람들에게 보호와 관용을 해주게 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들이 남보다 더 큰 책임과 임무를 갖고 있으며, 그러한 책무를 다하지 못할 때에는 준열한 비판과 엄혹한 판결의 대상이 된다는 점이다. 말하자면 이들 인간교목은 평범한 지위의 사람보다 더 거센 바람을 맞게 마련이며, 또 피할 수도 없다.
사람이 크면 클수록 권위를 누리게 되지만 그만큼 비만이 따르는게 극히 당연하다.
「구설에 오르지 않고 둥글둥글 지낸다」 「바람을 맞지 말아야지」-이러한 말이 흔히 들린다. 그러나 이것은 범인범부의 경우이다. 만일 직장의 윗사람, 관청의 책임자, 대학의 총장, 대실업가, 각계의 영도급인사, 정부의 고궁, 국회의원∼이러한 거물들이 「바람을 맞지 말아야지」하는 소극적인 태도를 지니고 있다고 상상하여 보자 그러한 곳에는 아무런 전진을 위한 변화는 없고 건전한 발전도 기대하기 어렵다.
그래서 「존·스튜어트·밀」이 『자유론』에서 되풀이 강조한 것은 비판이 없는 사회, 관용이 없는 시대에는 발전이 없다는 것이었다. 큰 나무가 거센 바람을 맞는 것과 같이 고위의 영도자는 항상 비판을 누리게 마련이다. 거센 바람이, 나무를 넘어뜨리지 않는 한 도리어 나무의 성장에 도움이 되는 것처럼 비판은 인간교목의, 건전한 성장을 의하여 필요하다.
거센 바람을 오해하고, 기피하며, 싫어하는 것은 위대와 관용을 지니게 마련인 큰 인물에게는 알맞지 않은 속성이다.
「프러시아」의 「프리드리히」 대왕은 어느 때 거리로 나서서 민정을 살폈다. 그는 어느 곳에서 사람들이 모여 웅성대는 것을 보았는데 이때 관헌들이 일제히 군중을 해산시키려 하였다. 이유인즉 벽상에 대왕의 정치를 비판하는 글이 붙여져 있었다. 대왕은 즉시로 『그 글을 높이 올려붙여서 더 많은 사람들이 보기 쉽도록 하라』고 명하였다.
그는 자기의 정치에 자신이 있었고, 따라서 비판을 기꺼이 받아들일 마음가짐이 되어있었다.
「프리드리히」대왕은 젊었을 때 문학과 음악을 사랑하고 역사서를 애독한 계몽군주였다. 훗날 그의 나라는 유럽 강국의 하나가 되었다.
나무는 클수록 맞는 바람이 세다는 속담의 뜻을, 우리 사회의 여러 인간교목들에게 바랄 수 있을 것일까. [차하순(서강대 교수·서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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