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구상<시인·하와이대 객원교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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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버거 대사의 봉욕>
「새뮤얼·버거」대사라면 한국에서도 낯익은 인물이다. 연전까지 미국의 주한대사로 있다가 월남부 대사로 전임되었던 분이다. 그런데 지난 3월 「하와이」대학 「클리블런드」총장이 그를 초빙하여 학내 「상주외교관」(Diplomat in residence)으로 임명하려하자 일부 교수·학생들이 맹렬하게 반대하여 좌절된 사건이 벌어졌다.
「버거」대사의 임명을 적극 반대하고 나선 것은 학교안 좌경세력인 「아시아」학자회 「멤버」들과 교련소속 교수들이 주동이 되고 이에 추종하는 학생들로서 먼저 이들의 반대이유와 그 주장은 『「버거」대사는 월남전에 있어서의 정부정책에 적극 참여하여 평화에 모반했으므로 일종의 전범이라고 말할 수 있으며 인도주의적으로도 죄인임이 틀림없다. 이러한 사람을 대학에 초청하는 것은 대학이 월남에 있어서의 미국의 행동에 대한 도덕적 무관심을 나타내는 것으로서 우리 대학의 영예를 위해서도 그(「버거」대사)와의 관련을 절대 수긍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반대성명에 대하여 「클리블런드」총장은 초청의도와 그 타당성에 대해 『대학은 적어도 모든 의견을 들어야 찬반의 기준을 얻을 수 있으며 미국대학이 미국정책에 관여한 사람이라고 이를 배격함은 옳지 않다』고 천명하였다.
이러한 논란이 계속되는 가운데 3월 초순 당사자인 「버거」대사가 「호놀롤루」에 직접 나타났다.
더욱 흥미 있는 것은 찬반의 교수·학생대표와 「버거」대사가 교육TV에 나서서 토론회를 가진 것이었다.
반대론 자들은 「집단살인」운운해가면서 「버거」대사에게 혹언을 퍼붓고 그가 학원에 상주하는 것을 반대하였다. 이에 대해「버거」대사 임명찬성자들은 『악한 사실도 진리탐구에 공헌할 수도 있다. 만일 악한 행위를 한 사람이나 그 의견을 모두 불태워야 한다면「버거」임명반대자들이 가장 좋아하는 「레닌」이나 모택동의 책을 먼저 불태워야 할 것이라』고 신랄하게 응수했다.
이 토론석상에서 자기 경력이나 초빙된 경위만 밝힐 뿐 매우 거북하여 쓰디쓴 얼굴을 하고 있던「버거」대사는 결국 취임을 자진 철회하고 돌아가 버렸다.
알다시피 「하와이」대학은 주립대학이오, 동서문화「센터」부설로 말미암아 국무성의 영향도 꽤 받는 곳이다. 이러한 학원에서 벌어진 이 사건의 시말은 미국대학내 풍조뿐 아니라 학원이 누리는 자치와 자유의 모습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

<하와이의 문단>
「호놀룰루」에는 19세기말의 유명한 영국작가 「로버트·루이스·스티븐슨」이 와서 산적이 있어 지금도 그가 살던 「마노아」의 집은 명소로 되어 있고 또 그의 이름을 딴 중학교도 하나 있거니와 그 외에는 별로 저명한 시인이나 작가가 살았거나 오래 머무른 흔적은 없다.
지난해에 발족한 국제「펜」「하와이·센터」에 나도 가입하여 두어 차례 모임에 나가도 보았고 또 거기 주최로 내 강연회도 가졌지만 그 「멤버」들의 대부분은 「하와이」대학 교수들로서 이중에 미국전체 문단에서도 알려진 사람이라면 회장직을 맡고있는 「루얼·데니」교수로서 그는 시인이요, 『고독한 군중』의 공저자다.
이「펜·클럽」의 사무국장인 수필가 「존·양」박사는 그의 가정관계로(부인이 고장택상 선생의 네째 마님이다) 우리 나라에도 친지가 많다. 그는 「하와이」대학에 POP라는 작가초청「프로그램」을 창립하여 운영해 왔는데 이 기구덕택에 한국에서 백철, 일본에서 천단강성, 중국에서 왕남씨 등 저명한 작가들이 「하와이」에 와서 체류하며 특별강의와 강연회를 가졌었다.
이러한 대학중심의 「하와이」문단은 자연히 창작보다 연구중심인데 이 속에 그래도 창작운동을 벌이는 한「그룹」이 있으니 『「호놀룰루」의 가장 오래고 영원하고 떠돌아다니는 시 놀이』라는 시동인의 모임이다. 지금 회원은 12명으로 이를 이끄는 분은 여류시인「필리스·틈슨」 여사로서 시집을 2권낸 역시 「하와이」대학 영문과 교수다.
이들은 지난 3월부터 정부의 문학지원자금을 얻어 『학원 안의 시인들』이라는 시 쓰기 운동을 벌였는데 그들은 국민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등엘 직접 파고 들어가 한사람이 한주 14시간씩의 시 교실을 가졌다. 「하와이」에는 「하와이」토인들의 고유문학이 존재한다.
물론 이들에게 문자가 없었으므로 이것은 구전의 설화들로서 이를 재료로 한 연구나 창작이 꽤있고 또 이곳에서 어울려 사는 각양각색의 민족이 『인간가족』이라는 이상이나 그들 삶의 애환을 표현하려는 단편적 노력이 지상에 가끔 눈에 띄지만 아직도 이렇다할 거작은 나오지 않고 있다.
이렇듯「하와이」에 문학을 비롯한 각 자매예술이 그리 활발치 않고 또 우수하고 유능한 예술가들이 모여들지 않는 이유 중에 가장 큰 것은 일반적으론 누구나 부러워하는 상록의 풍토가 아닌가 한다. 왜냐하면 일시 여행자들이나 심신의 안락만을 누리려는 범 상인들에겐「하와이」의 풍토가 낙원일지 모르지만 생성과 소멸의 구분이 확연치 않은 이 속에서 극작가나 사상가가 살기엔 마치 정신적 진공지대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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