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경과 사랑 받는 예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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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동방예의지국』이니 『고요한 아침의 나라』니 하는 말로써 상징되던 한국사회의 전통적「이미지」가 이 땅에서 사라진지는 꽤 오래다. 오늘의 한국사회에서 도도히 흐르고 있는 일반적 풍조는 한마디로 물질주의·배금주의·찰나적인 현 세계 제일주의가 판을 치고 있을 뿐이요, 여기서는 어디서도 인륜관계의 절대적 가치와 정신적 유열을 최고의 덕으로 여겨오던 한국사회의 전통적 가치체계는 그 빛을 볼 수 없다.
이 같은 황량한 정신풍토하, 국민의 조화된 영육생활의 기조가 되고, 생산적인 문화발전의 기조가 될 새 가치관의 정립과 그 토착화를 위한 작업은 오늘을 사는 모든 지성인들에게 공통적으로 부과된 화급한 당면과제라 할 수 있다.
지난 17일, 한국예술문화 윤리위「멤버」들이 가진「세미나」에서도 문학과 음악·영화계 전체를 통해 새삼 우리의 외래문화 수용태도에 대한 근본적인 반생논이 제기되었다. 특히 유행의 첨단을 걷는 이른바 대중문화·대중예술의 분야에서도 그 작가나 작품이 사회적인 「존경과 사랑」을 받는 지위를 얻기 위해서는 그것들이 우리의 전통문화에 뿌리박은 주체성 확립의 문제와 연관되어야한다는 논이 제기되었다는 것은 주목할만한 일이다. 삼가자 가운데에는 이 같은 주체성 확립의 문제를 부연하면서 이를 서구의「르네상스」에 비견할 『문예중흥』의 과제라고 규정했다. 그들은 우리 문학이나 예술이 부각시켜야 할 새로운 인간상으로서 부정적 생리를 탈피하고 퇴폐풍조를 몰아낸 인간상, 의욕적·행동적인 인간상, 희생·봉사의 정신이 투철한 인간상을 들었다. 또 그들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이 나라의 대중예술은 당분간 사회교화를 위해 봉사할 것을 제안한다고 까지 하였다.
그들이 제기한 문예증흥론의 기조에 깔린 문제의식 자제에는 물론 몇 가지 문젯점이 없지도 않다. 왜냐하면 이러한 논거에는 그들이 고조하고 있는 새로운 주체의식과 한국인의 전통적인 가치관 사이에 어떤 연관이 있어야 하겠느냐에 대해 아무런 설명을 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뿐더러, 그들은 또 애써 자신들의 이러한 문제의식 자체가 지난 10여년간 이 나라에서 강행된 경제개발 위주의 정책기조와 유관하다는 사실을 외면하려는 듯한 입논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로 한국적 전통문화의 핵심을 이루고있는 밝고 낙천적인 인간상이나 그들 사이에 존재했던 믿음의·인간관계에 대한 새로운 가치서열 부여와 아울러서 이에 대비한 오늘날 한국사회의 정신적 상황에 대한 냉철한 자기비판이 없는 한 아무리 예술활동에 있어서의 주체성문제를 강조한다 하더라도 그것만으로써 진정한 창작적 예술문화가 생산되리라고 기대하기는 어려운 것이다.
모든 지적인 창조활동에 있어서 다 그렇듯이, 민족적 주체성의 고조가 자칫 편벽한 「어내크러니즘」에 흐르거나, 또는 아전인수격인 결론을 도출하기 위한 이론적 비약을 감행하는「도그마」를 의미하는 것일진대, 그것은 필경 문화적 고립주의로서 우리의 문화적 성장을 도리어 방해하는 것 이외의 아무 것도 아닐 것이다.
예술문화인을 포함한 모든 지성인들에게 있어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그들이 살고 있는 시대의 성격을 전통문화의 가치계열과의 관련하에서 어떻게 정서할 것인가를 뚜렷이 하는 것이다. 이러한 이론적 인식의 기초 위에 서서 새로운 시대의 국가사회가 요구하는 인간상을 「리얼」하게 부각시키는 한편, 반대로 이 같은 바람직한 인간상 형성에 부정적으로 작용하는 일절의 요소들에 대해서 과감하고 끈질긴 대결의 자세를 견지하는 것이 그들의 임무임을 알아야할 것이다. 그리고 이 같은 우리의 기대는 이른바 본격예술의 영역이건 대중문화의 영역이건, 결코 차이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예술활동이 인간의 심오한 지적활동의 일경인 한에 있어서는 항상 높은 도덕성과 윤리의식의 근원이라 할 가치적 탐구를 앞세우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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