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 이데올로기의 아스팍|박준규(서울대 문리대 교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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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아스팍」(「아시아」태평양 이사회)은 한·일 국교정상화, 한국군의 월남파병, 등 이를테면 「이동원 외교」기 한창 상승기에 있을 때의 소산이었다.
당시로 만하면 미국의 「아시아」정책이 월남전을 중심으로 적극화하고 있었고 중공의 존재를 「아시아」평화의 화근으로 보는 미국의 입장에는 요동이 없었으 때였다.
그러한 상황에서 「아스팍」의 창설을 주관한 한국 정부는 이 기구의 장래에 대하여 적지 않은 기대를 걸었던 것이 그 관계당국의 의욕도 상당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러다가 1968년에 들어서 「존슨」대통령이 월남 사태로 말미암아 고배를 마시게 되고 「닉슨」씨가 월남전의 수습을 표방하여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로는 미국의 「아시아」정책이 어지럽게 전환되고, 대 중공관이 급변하는 등 「아시아」국제 정세에 일종의 이변이 생김으로써 관련국가사이에 「아스팍」의 성격과 향방을 두고 논쟁과 회의가 일게되었으며 그로 말미암아 「아스팍」은 제구실을 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아스팍」에는 반공국가들이 거의 망라되고 있는데 최근 「아시아」정세와 중공의 국제적 지위가 급변함에 따라서 자유중국은 국제정치에서 소외됐고 월남은 집안 사정이 말이 아닌데다가 「필리핀」태국 등은 중공의 동태에 신경을 쓰게된 것 같고 일본은 중공과의 관계개선의 기회를 노리고 있으며 동남아 국가연합(ASEAN)에도 속하고 있는 「말레이지아」는 중립주의에 철저하며 한국도 남북한 적십자회담의 진전 등으로 반공면에서 유연한 자세가 필요하게 되었다.
주로 국제 정세관의 차이에서 오는 회원국사이의 이견은 「아스팍」의 성격 및 향방에 대한 재정리를 촉구한 결과가 되었으며 이번 제7차 「아스팍」각료회의는 그러한 문제를 중점적으로 다루었다는 점에 특색이 있었던 것이다.
박 대통령은 개회식에서 『「이데올로기」시대는 퇴조했다』고 지적하면서 『「아스팍」」이 다른 국가나 또는 국가군에 대항하는 정치적인 또는 군사적인 기구가 아니며 지역의 평화와 발전을 추구하는 기구임에 감안하여 경제·기술·사회·문화 등 제 분야에 있어서 실제적인 협력을 더욱 개척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 이 제의는 공동성명의 각 항에 그대로 반영됐다.
즉 『「아스팍」은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있어서 평화와 발전을 지향하는 지역협력기구이며 타국에 대항하는 정치적 또는 군사적기구가 아니며, 「아스팍」의 목표와 목적에 건설적으로 참여코자 하는 지역내 비회원국에 그 문호가 개방되어있다』는 조항이 그것이다. 「아스팍」의 성격과 목표는 이렇게 해서 일단 정리된 셈이지만 「아스팍」의 장래에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공동성명에서 특정국가를 지적해서 말한 구절은 없으나 중공과 같은 나라가 장차 이 기구에 대하여 어떠한 반응을 보일 것인지는 현재로서는 미지수에 속한다.
자유중국이 회원국으로있는 이 기구에 중공이 선뜻 가입하려하지 않으리라는 것은 예상되는 바이지만 북괴와 월맹을 세력권으로하는 중공이 장차 이 기구를 두고 어떻게 나올 것인가는 심심한 관심거리가 아닐 수 없다.
「아스팍」의 발족을 전후하여 태평양·동남아지역에는 별개의 지역 협력기구가 논의되고 형성된 바 있다.
미국·「캐나다」·일본·호주 등 태평양 연안의 선진제국이 추구하는 태평양 연합과 금번 회의에서도 거론된 동남아 국가연합이 그 것이다. 그런데 한국은 여러 사정으로 보아 전자의 범주에는 속하지 않으며 동남아의 중립화를 표방하는 후자에 가담할 수도 없는 처지인 것이다. 그러한 사정에서 현재로서는 한국이 가담할 수 있는 유일한 지역기구는 「아스팍」밖에는 없는 것이다.
그런데 그 동안의 사경으로 보아 「아스팍」이 지역협력기구로서 얼마만큼이나 발전할 수 있느냐 하는 것도 두고 보아야 할 문제이다.
자유중국은 반공전선에서 가장 믿을만한 우맹이면서도 경제면에서는 인색한 경쟁대상에 불과하며 일본의 경제력이 구석구석 침투하고있는 동남아의 전반적 사정이 지역협력기구로서의 「아스팍」의 발전에 반드시 호적한 것도 아님을 상기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중공의 등장과 더불어 미국과 일본이 중공과 동남아시장을 두고 각축전을 벌이게 될 가능성도 없지 않은 이때 한국으로서는 동남아지역의 경제적 판도의 추세를 냉철히 검토하여 동남아진출에 만전을 기해야할 것이다.
「아스팍」제 7차 각료회의의 성과는 실질적인 것이라기 보다는 상징적·정압적인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시아」경세를 감안하여 「아스팍」의 성격과 향방을 재정리한 것은 정부의 용신임에는 틀림이 없다.
한국의 현실에서 볼 때 장기적 국가시책으로서 동남아 진출을 추진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과제라 하지 않을 수 없으며 그러한 방향에서 지역 협력기저로서의 「아스팍」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길로 열릴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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