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 호르몬 나오고 약물 흡착 되는데 … 병원 수액줄 '안전 불감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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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수액줄에서 발생하는 환경호르몬과 약물흡착으로 불특정 다수가 위험에 노출돼있다. 김수정 기자

병원에서 흔히 쓰는 수액줄이 안전 사각지대라는 지적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환경호르몬이 검출되고, 약물이 수액줄에 달라붙어 체내에 전달되는 약물량과 약효를 정확히 예측할 수 없다는 문제점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국내에서는 문제를 일으킬 우려가 있는 수액줄이 여전히 90% 이상 사용되고 있다. 환자도 의사도 위험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다. 연간 1억8000만개가 쓰이는 수액줄이지만 관련규제는 전무하다. 최근 수액줄의 약물흡착에 안전기준을 마련하고, 환경호르몬이 검출되지 않는 수액줄이 있다는 것을 환자에게 알려 선택권을 보장하는 법률개정안이 나오게 된 배경이다.

글=이민영 기자
사진=김수정 기자

임산부·영유아·노인, 환경호르몬 노출위험 커

의료기관에서 사용하는 수액줄은 재질에 따라 3가지다. 플라스틱 소재인 PVC(폴리염화비닐)와 폴리우레탄·폴리올레핀이다. 환경호르몬이 문제가 되는 건 PVC로 만든 수액줄. 플라스틱인 PVC를 부드럽게 하기 위해 사용하는 화학첨가제, 프탈레이트가 문제를 일으킨다. 수액줄에는 DEHP라는 프탈레이트계 화학물질이 많게는 50% 이상 들어있다. 약물이 수액줄을 타고 내려오면서 환경호르몬과 섞여 인체에 투여되는 꼴이다. 중대의대 예방의학교실 홍연표 교수는 “DEHP가 제대로 배출되지 않으면 인체에 해를 끼치는 독성물질”이라며 “생식기계통과 지능 발달은 물론 당뇨·비만과 같은 대사장애 질환과의 연관성이 발표되고 있다”고 말했다.

 면역력이 약한 영유아·노인·임산부·환자 등도 문제다. 인천성모병원 동서중개의학연구소 양윤정 박사는 “영유아는 대사율이 높아 성인에 비해 독성물질 흡수 정도가 높다”며 “신경·면역·호흡계가 충분히 성숙하지않아 체내에 유입된 프탈레이트류를 원활하게 배출하지 못할 수 있다”고 말했다. 노인은 생체기능이 떨어져 체내에 유입된 유해인자를 제대로 배출하지 못할 위험이 크다. 태아기에 모체를 통해 노출된 프탈레이트는 발달기와 성인기에 이르러 나타날 수 있다. 실제 미국에서는 임신 기간에 산모에게서 채취한 소변 중 프탈레이트 농도가 높을수록 신생아의 생식계 발달이 미숙한 것으로 관찰됐다. 우리나라에서는 일부 지역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소변 중 프탈레이트 농도를 검사했는데 농도가 높은 군이 낮은 군보다 지능이 낮았고,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 증상 점수가 높았다. 양윤정 박사는 “고위험 집단의 소변 중 DEHP 농도가 일반 인구 집단보다 많게는 138배 높게 나타난다는 연구가 있다”고 말했다.

 환경부는 2007년 프탈레이트를 쓴 PVC 수액백 사용을 금지했다. 그렇지만 수액줄은 규제대상에 포함되지 못했다. 당시 기술로는 PVC를 대체할 수액줄이 개발되지 못해서다. 이후 환경호르몬에서 자유로운 폴리우레탄 재질의 수액줄이 나왔다. 그러나 폴리우레탄 수액줄은 PVC와 마찬가지로 일부 약물이 수액줄 내부에 달라붙어 약효가 제대로 전달되지 못하는 문제가 있다.

환자안전·선택권 보장하는 제도 절실

환경호르몬과 약물흡착 걱정이 없는 폴리올레핀 소재의 수액줄이 나온 건 2010년부터다. 그렇지만 국내에서는 여전히 사용하는 곳이 적다. 수액줄의 유연성이 부족하거나, 수입품이라 비싼 탓이다. 이런 가운데 환경호르몬 용출과 약물흡착이 없는 수액세트가 국내에서도 최근 개발됐다. 환경부가 차세대 에코이노베이션 개술개발사업 일환으로 지원한 결과다. 폴리올레핀 소재 수액줄이 국산으로 대체되면 가격이 3분의 2 수준으로 낮춰진다.

 친환경 수액줄 공급 기반이 마련되면서 환자의 안전과 선택권을 보장하기 위해 현재 수액줄과 관련한 두 건의 개정안이 발의돼있다.

의사출신인 안홍준 의원(새누리당)이 3월 발의한 개정안은 의료진이 환자와 보호자에게 환경호르몬이 없는 수액세트를 설명하고, 사용 여부 확인을 의무화하는 것이다. 아동과 임산부, 중증환자, 항암치료환자에게는 건강보험을 적용한다. 보건복지위원회 위원장인 오제세 의원(민주당)의 개정안은 수액제제와 수액줄의 재질별 흡착 정도를 표기하도록 의무화하는 게 골자다. 일반환자가 구입할 수 있도록 급여기준을 만들고, 점차 건강보험에서 보장할 수 있도록 확대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내용도 담았다.

 개정안이 시행돼 환자가 혜택을 받으려면 복지위 법안심사소위원회와 전체회의,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를 거쳐 본회의에 상정, 여야합의로 통과돼야 한다. 홍연표 교수는 “의료기관에서는 친환경 수액줄 제품이 비싸고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사용을 꺼리는 실정”이라며 “정부가 관련 의료용품에 보험급여를 적용하고 PVC 의료용품의 사용을 규제하는 등 제도적 뒷받침에 적극 나서야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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