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체력장제도의 채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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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문교부는 내년도 고입입시 때부터 종래의 체능검사를 폐지하고, 이에 대신할 새로운 체력장제도를 채택케 할 것이라고 발포한바 있었던 것인데, 이제 그 윤곽이 대체로 잡힌 것으로 보도되었다. 작일 본지보도에 의하면, 문교부는 그 동안 이 체력장제도의 근간이 될 새로운 체력검사기준과 체력급수 판정기준을 작성 완료하여 곧 그 시행세칙을 발표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진 것이다.
종래 고교입시의 한 부분이었던 체능검사제도에는 많은 문제점들이 있어 해마다 적지 않은 논란이 집중되었던 것인데, 중학 무시험 진학제 실시 후 최초의 경쟁입시를 치르게된 금년도 고교입시에서는 수많은 동점자 사태가 빚어지고, 이 때문에 총점 2백점 만점중 20점으로 배점된 체능검사성적이 학생의 합격여부를 실질적으로 좌우하게되자, 그 부조리를 시정하라는 요구가 빗발치듯 쏟아져 나왔던 것은 아직도 기억에 새로운바 있는 것이다.
따라서 문교부가 구상 중에 있는 새 체력장제도의 주안점은 첫째 종래 고교입시와 체능검사에서 「테스트」하던 달리기·던지기·턱걸이(엎드려 팔 굽히기)·넓이 뛰기 등 4종목을 8종목(ⓛ앞으로 굽히기 ②윗몸 일으키기 ③왕복 달리기 ④턱걸이 또는 팔 굽혀 매달리기 ⑤던지기 ⑥오래달리기 ⑦멀리뛰기 ⑧1백m달리기)으로 늘리고, 둘째 종목마다 25점씩의 배점기준에 따라 1급 내지 5급까지와 특급 등 6개 체력급수를 세분화함으로써 학생개개인의 연령에 따른, 좀더 종합적인 체력측정결과를 입시성적으로 반영케 하려는 것 등이다.
이 같은 제도의 채택은 고교입시전형에 있어서의 체능검사 성적이 갖는 불가치를 그대로 두면서 그 객관성을 높일 수 있다는 점에서는 확실히 진일보한 것이요, 이러한 제도의 실시로써 수험생이나 학부모들이 갖는 불만의 일부가 해소될 수 있으리라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우선 체력측정의 종목이 많아지고 그 세분된 평점이 집계됨으로써 턱걸이 한번 못해 낙방의 고배를 마시게 되었다 운운의 불만은 해소될 수 있겠기 때문이다. 또 적어도 춘추 2회에 걸친 안정된 상황하에서의 체력측정 기회를 가짐으로써 엄동하 초조한 환경 하에서 당일치기로 실시할 수밖에 없던 종래의 체능검사의 모순을 해소할 수 있다는 장점도 인정해 줄만한 것이다.
그러나 국민체위의 전반적 향상을 도모하기 위해 제정된 체력장제도를 이처럼 입시전형의 한 방편으로 삼는데 대해서는 얼른 찬성키 곤란한 문제점들이 또한 적지 않다는 것을 외면해서는 안될 것이다.
첫째, 이 같은 체력장제도에 의해서 측정된 체력급수가 고교학생의 수학능력을 측정하는 객관적 기준이 될 수 있겠느냐 하는 문제이다. 「퀘텔」(비 체량 체력)지수, 「로델」(신체충실)지수, 「멜리디지」(영양상태)지수 등 외국에서 개발된 여러 가지 체력 측정기준 등도 모두 일장일단을 면치 못하고 있는 것인데, 8개 체능 종목의 측정치를 산출 평균한 체력장제도로써 단 한사람이라도 유위한 국민의 고교진학을 막는 것은 찬성키 어렵다는 것이다.
둘째, 입시경쟁에 관련되는 한, 정실과 부정의 개재를 상정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 일반국민의 숨김없는 감정임을 상기할 때, 출신학교에서의 체력검정을 토대로 한 체력장제도가 상급학교 진학에 실질적인 영향을 주게된다면, 학교 사회 안에 적지 않은 혼란이 빚어질 것임도 무시해서는 안될 것이다. 더군다나 운동장시설이나 측정기기에 있어서의 평준화를 바랄 수 없는 우리의 실정하, 이 제도가 학교지역사회전반의 불신과 잡음을 확산하는 요소가 되는 것을 우리는 크게 우려한다.
그러나 끝으로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이 같은 제도의 채택이 과거 일제치하에서와 일부 전체주의 국가에서의 실례처럼, 국민의 획일적인 행동방식을 강요하는 도구로 전락하는 계기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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