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대 소녀'들 "더 영 원스 ~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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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세월은 가도 열기는 여전했다. 할아버지 가수와 아줌마 청중들은 깊은 주름살에 머리는 희끗희끗했지만, 환호는 뜨거웠다.

7일 오후 8시, 서울 잠실 실내체육관. 한때 세계를 주름잡으며 한국의 원조 '오빠부대'들의 우상이었던 영국의 로큰롤 스타 클리프 리처드(62)가 34년 만에 다시 한국 팬들을 만나는 자리.

1969년, 서울 시민회관과 이화여대 강당을 메웠던 소녀들은 이제 중년의 주부가 되어 끼리끼리 혹은 부부동반으로 앉아 청춘의 한때를 되돌아 보며 봄밤의 추억에 흠뻑 젖었다.

첫 곡 '위 돈 토크 애니모어'의 흥겨운 멜로디가 시작되자 5천5백석을 거의 채운 올드 팬들의 환호가 울려 퍼졌다.

복도의 유리창이 깨져나갔던 그 날만큼은 아니지만 천장이 들먹거릴 정도였다.

데뷔곡 '무빗'에 이어 '에버그린''더 영 원스' 등 클리프의 히트곡으로 분위기가 고조되자 청중들은 야광 손전등, 꽃술을 흔들며 노래를 따라 불렀다.

그의 노래, 그의 몸짓, 그의 인사말 하나 하나에 열광하다 아예 객석에서 일어나 클리프의 얼굴이 새겨진 티셔츠를 흔들며 춤을 추는 모습도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클리프 리처드의 공연을 봤다는 정현숙(50.경기도 분당)씨는 "고교 동창 22명과 함께 오빠를 만나러 왔다"며 "꿈만 같다. 정성을 다해 노래하는 그를 보니 원숙해진 오늘의 우리가 옛날보다 더 좋다"고 즐거워했다.

30여 년 전, 먼 아시아에까지 날아와 동양 여성들이 지르는 기성에 묻혀 손수건 세례를 받았던 왕년의 스타는 흐르는 세월 속에서도 음악으로 하나가 된 이 순간을 소중히 여기는 듯 "감사합니다"는 인사를 남겼다.

'더 영 원스' '서머 홀리데이' 등 대표곡을 따라부르는 사이 짧은 봄밤이 깊어가고 클리프 리처드는 그 옛날처럼 땀으로 범벅이 돼 세계 평화를 기원하는 '밀레니엄 프레어'를 마지막으로 불렀다.

박수를 치던 청중들도 모두 일어나 목청껏 따라 불렀다. 추억이 있어 더욱 아름다운 밤이었다.

송봉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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