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 적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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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지난 4월말까지의 재정 수지 실적은 1백78억원의 적자를 시현 한 것이 드러났는데 이는 주로 2백억원 가까운 내국세 수입 계획의 차질에 기인한 것이다.
즉 4월말까지의 내국세 징수 실적은 6백33억원에 불과, 예산상의 회수 실적이 작년의 22·8%에서 올해에는 18·8%로 격감된 것이다. 이러한 세수 결함은 71년도의 세수 목표 달성을 위한 조기 징수의 여파에 기인되는 바도 크다 하겠으나, 그 보다는 시중 경기가 매우 침체하고 있는데 더 큰 원인이 있는 것으로 보아 틀림없다.
주요 제품의 출하 상태를 보면 TV·청량음료 등 극소수 품목만이 전년 동기에 비해서 출하 증가를 보이고 있을 뿐, 그 나머지의 거의 전 품목이 30% 내지 60%까지의 출하 감소를 보이고 있다는 것이 국세청 통계로도 밝혀졌다.
정상적인 예산 집행을 위해서는 적어도 월 평균 3백60억원 수준의 징세가 있어 거쳐야만 당초 예산 사업에 지장이 없을 것인데 지난 4월의 내국세 징수 실적은 고작 1백32억원에 그쳐, 작금의 세수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 것인가를 여실히 반영하고 있음을 중시해야 하겠다.
세입 쪽의 부진은 필연적으로 세출 집행을 제약하는 것이며, 때문에 특히 재정투융자 사업에 대한 집행이 심각한 타격을 받게 된다는 것은 당연하다. 실지로 4월말 현재 투융자 집행 실적은 당초 집행 계획의 65% 수준에 머물러 있으며, 예산상의 집행율은 14·4%에 불과한 저조 상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재정 투융자조차 계획에 크게 미달하는 상태이기 때문에 총수요 감퇴율은 매우 크지 않을 수 없다. 일반적으로 불황이 진행될 때, 민간 투자는 거의 중단되는 것이 통례다. 때문에 불황에 대처해서 재정 투융자를 대폭 확대시켜 경기를 지탱시키는 것이 경기 정책의 정석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의 실정은 발권에 의한 적자 재정 집행을 허용할 수 있을 이 만큼 외환이 준비되어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적자 재정 방법으로 경기를 회복시킬 수도 없는 난처한 입장에 있는 것이다. 또 예산상으로 재정이 중앙 은행에서 차입할 수 있는 한도도 규제되어 있으므로 정부 스스로 법을 어기지 않는 한, 투융자를 무리하게 늘릴 수는 없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금융을 통한 수요 확대를 시도하는 경우에는 이른바 IMF 협약에 걸리는 애로가 있다.
이처럼 불황 타개를 위한 경제적 및 제도적인 탈출구가 거의 막혀 있는 상황에서 당국이 선택 할 수 있는 정책적 여지는 매우 제한될 수밖에 없는 것이며, 사리의 당연한 귀결로 불경기를 극복하는데에는 많은 시일을 소비해야 할 여건이 굳어져 있음을 당국은 확실히 하고서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오늘의 경제 여건 하에서 만일, 현재의 불황이 지속성을 갖는 것이요, 또 그렇다고 대담한 적자 재정과 「오버·론」 정책을 채택 할 만한 조건도 충족되어 있지 않은 것이 사실이라 한다면, 이제 정부가 해야 할 일은 자명하다하겠다.
즉 현실적인 제반 여건으로 보아 재정 규모를 조정해서 경기 상황에 상응하는 수준으로 세수 계획을 조정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조정에는 물론 커다란 용기가 필요한 것이며, 오늘의 실정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오직 그러한 용단만이 절실하다는데 이론이 있을 수 없다.
경제적 논리는 냉혹한 것이며, 정책 당국이 본질적 동향을 외면할 때, 수습하기 어려운 교란 현상이 야기 될 것이라는 일반 정 책원리를 당국은 새삼 깊이 음미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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