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 ·온건반응의 의중|정치국의 내부사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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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닉슨」조치에 대한 소련의 잠정적인 「온건반응」은 「크렘린」집권층 내부의 정치상황과 역관계를 잘 반영하고 있다.
이것은 집권 후 최대의 외교적 「딜레머」에 직면한 「브레즈네프」체제가 3일 동안의 정치국 회의를 통해 집권층 내부의 일부 강경파들을 누르고 「브레즈네프」의 중도적인 외교기조를 계속 재확인했다는 것을 시사한다.
이것으로 「흐루시초프」의 실각처럼 미국의 「쇼크」가 몰고 올 수도 있는 「브레즈네프」지도권의 국내 정치적 위기는 일단 방지 됐을지도 모른다.
「브레즈네프」는 이번 정치국 회의에서 일단 다수파 공작에 성공, 자신의 정치생명과 노선을 계속 승인 받음으로써 지난71년 4월에 있었던 소련 공산당 24차 대회 때 자신이 정치국을 자파 세력으로 보완하고 재편한 것을 「천만다행」으로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때까지만 해도 「브레즈네프」는 「코시긴」 「포드고르니」와 더불어 「트로이카」를 구축, 단지『동류중의 선임자』의 지위에 머물러 있었다.
심지어 70년에는 그의 경제실책을 두고서 「수슬로프」 「셀레핀」 「마주로프」등 강경파들은 그의 「리더쉽」에 대해 만만찮은 도전의 화살을 겨누었었다.
그 당시 「브레즈네프」는 국내의 자유파 지식인과 「체코」침공에 대한 비판자들을 억누른다는 조건으로 비밀경찰과 국방상 「그레치코」의 도움을 받아 간신히 위기를 모면했다.
그후 24차 당 대회 때 「브레즈네프」는 정치국을 재편, 다수파를 구축함으로써 자신의 당내정치기반을 굳히고 대회를『일원적인 통일성』과 『현상유지 노선의 확인』으로 이끌었다. 그 당시 그는『「미사일」경쟁의 증지는 자원을 생산적인 목적에 돌릴 수 있다』는 말로 자신의 기본노선을 집약했다. 그는 반대파요 강경파인 「셀레핀」을 서열7위에서 11위로 떨어뜨리고 경쟁자 「코시긴」을 3위로 격하, 그 대신 「마주로프」를 포섭해 강경파의 유일한 승진 「케이스」로 8위에서 7위로, 세련된 신진세대요 공존론자인 「폴리안스키」를 9위에서 8위로 각각 승격시킨 다음 11명에서 15명으로 늘어난 정치국원 4명을 모조리 자파 당원으로 메웠다.
「빅토르·근리신」 「딘무카메드·쿠나예프」 「페오도르·쿨라코프」 「블라디미르·셰르비츠키」 등이 그들이다.
그밖에도 「키릴렝코」·「보로노프」, 당 중앙위서기 「카투셰프」등이 그의 노선을 따르는 측근이며 「수슬로프」(68)는 늙고 병약하다. 이런 유리한 세력분포에서 「브레즈네프」의 중도적인 외교구상-특히 「닉슨」중공방문후의 괄목 할 만한 역공세-은 당내·군부·비밀경찰의 지원 또는 묵인을 받아왔으며 이번의 정치국 회의에서도 그의 「온건반응」은 일단 승인을 받은 듯 하다.
그러나 그럴수록 군부와 KGB에 대한 그의 부채는 무거워진다. 그 빚을 갚기 위해 그는 앞으로 어떤 강경 반응을 그 반대 급부로 지불해야할지도 모른다. 이번의 공식 성명 끝머리엔 『앞으로 결론을 내리겠다』는 유보 사항을 남기고 있다.
그 유보된 「강경반응」은 「닉슨」과의 흥정 성과 여하에 따라 형체를 드러낼 것이다. 바로 그때야말로 「브레즈네프」정치 생명의 큰 고비라고 말할 수 있다.<유근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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