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는 체념뿐…전화 속의 월남민간인|사이공=신상갑 특파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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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월남의 전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격전 뒤에는 많은 피아 장병들의 희생이 뒤따르지만 그에 못지 않게 민간인의 희생과 곤욕이 크다. 밤낮을 쉬지 않고 일진일퇴의 치열한 공방이 계속되는 「안록」시만 해도 그렇다.
시가지 4분의 3이상이 폐허화된 「안록」의 거리마다 군인은 물론 민간인의 시체가 즐비하게 깔려 있고, 부상자의 신음소리가 그치지 않는다. 그러나 이들은 치료는커녕 보아주는 아무도 없이 버려져 있는 것이다.
지난 22일에 월남의 국제적십자 요원들은 「안록」시에서 무장한 민간인과 피난민들을 소개시키기 위해 24시간 휴전할 것을 호소했다. 이러한 휴전 제의는 영향력 있는 「안쾅」사원의 지도자들도 요구하고 「제네바」의 ICRC에서도 주선할 뜻을 표한 바 있으나 「베트콩」 측은 이를 거부했다.
전쟁「뉴스」의 그늘에 숨은 처참한 민간인의 피해와 피난민의 동태를 보면 그 비극을 알 수 있다.
지난 3주일 동안의 전투에서 만도 월남인 25만 명이 그들의 집을 잃었다. 최소한 5백 명의 민간인이 죽고 1천 명이 부상했다고 한 월남 고위간부는 밝힌다. 전선에서 전투가 계속됨에 따라 앞으로도 매일같이 보다 많은 사람들이 집을 쫓겨나고 죽고 다칠 것이다. 그러나 민간인 피해에 대한보고는 「사이공」에 매우 늦게 도착한다. 게다가 「군사적인 상황」 때문에 주민들의 주거와 동태가 불명하고, 통계도 부정확하며, 발생하는 모든 사태의 정보도 아주 간단하거나 엉터리가 많다.
따라서 68년의 구정 공세이후 얼마나 많은 민간인이 이동하고, 죽고, 다쳤는지 정확한 파악조차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격전의 와중이라는 제약 속에서도, 비록 대부분 미국의 원조에 의존하는 것이지만 피난민 구호에 얼마간의 노력은 하고 있다.
피난민이 제일 많이 나온 곳은「쾅트리」성으로 약 1만 5천 명에 이른다. 이 지역은 비무장지대에 인접한 월남 최북단에 위치해 3월 31일에 시작된 월맹 대공세 때 제일 먼저 심하게 두들겨 맞은 탓이다.
약 9만 명으로 추산되는 민간인들이 현재 「쾅트리」남쪽「투아티엔」의 성도 「후에」 에 있는 교회당·사원 또는 학교 등에 분산돼 살고 있다.
한편 얼마 전에 미 월 원호처 당국은 약 2천 명의「브루」산악 족을 「후에」에 있는 피난민 수용소에서 중부고원 「반메투오트」에 새로 세워진 정착지로 공수 이주시켰다. 현재는 군용 「텐트」에 수용돼 식량과 음료를 공급해 주고 있지만 이들에게는 가구마다 수「에이커」의 땅과 주택건립자금을 보조해 주기로 약속하고 있다.
또「후에」에 있는 다른 피난민 약 1만 명이 같은 조건하에 보다 남쪽지역에 새로 정착지를 구할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귀향에의 강한 미련을 못 버리고 있다.
약은 친구들은 자기 집이 폐허가 돼 버렸음에도 불구하고 전쟁이 소강상태에 들어가기만 하면 재빨리 돌아가겠다고 벼르고 있다.
그러나 관계자들 말로는 6개월은 지나야 귀향 「붐」이 시작될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지리하게 외세의 압력과 전쟁에 시달려 온 월남인들은 거의 체념상태에서 전쟁의 격랑에 떠내려가며 신음하는 것이다.
치열한 공격이 진행 중이었기 때문이 아마 그들은 이 휴전으로 고립된 정부군이 증원 군과 보급품을 받게 되는 것을 두려워했을지도 모른다. 「파리」 대표단은 다만 『쌍방의 공방전이 치열해서 휴전은 현실적이 못된다』는 이유로 이 인도적인 배려를 거절했었다.
월남에서도 이제 20여 년간 전쟁이 계속되어 왔다. 지금까지의 전쟁양상이 주로 「게릴라」전이 있지만 민간인이 받는 피해는 최근의 정규전 아래서 받는 피해나 별반 차이가 없이 계속되어 왔다. 다만 최근에 미국이 실시한 소위『융단폭격』이 적과 비 전투 민간인을 구별하기가 더욱 어려워져서 폭격에 의한 피해가 더욱 불어날 것은 쉽게 상상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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